제조업은 영원하다

얼마 전, 정부의 한 부처에서 주관한 창업 관련 프로젝트에서 심사를 맡은 적이 있다. 총 62개 팀이 참가하여 실리콘밸리로의 특별연수를 위한 경연을 벌였는데 이들의 사업계획을 모두 검토하고 나서 보니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깨닫게 되었다. 62개 팀이 거의 대부분 웹과 모바일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 하는 일종의 정보제공 서비스업을 하겠다고 제안을 하였고, 순수한 의미의‘제조업’은 딱 두 곳밖에 없었다. 아무리 ‘소셜’과 ‘모바일’이 대세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일상은 ‘제조업체’가 만든 제품을 소비하며 살고 있고, 그 ‘소셜’과 ‘모바일’마저 결국에는 잘 디자인되고 탄탄하게 제조된 ‘기계’들을 통해 우리의 눈과 귀가 소비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요즘 젊은 사람들의 관심과 도전이 너무 한 곳에 편중되어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함께 한 심사위원들과 ‘도대체 이 젊은이들은 페이스북과 스마트폰이 없었다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하며 우려 섞인 농담을 나누기도 했다.

소셜네트워크 서비스

소셜네트워크 서비스

비단 그렇게 창업 경진대회에 참가한 회사 만이 아니다. ‘소셜-모바일’ 쏠림 현상은 한국의 벤처투자업계에 종사하는 투자가들 누구나 공감하는 현실이다. 이렇다 보니 우리 회사가 작년 한 해 동안 투자한 기업들 중에서 이른바 하드(Hard)한 제품을 개발하여 직간접적으로 제조를 해서 판매를 하는 사업모델을 가진 기업들도 손에 꼽을 정도다.

닷컴버블 시기 이후 거의 10여년 만에 다시 찾아온 벤처 창업의 열기가 제법 뜨겁다. 작년 중반 이후부터 많은 젊은이들이 창업의 대열에 합류를 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정보통신 기술기반의 대기업들 (삼성전자, LG전자, NHN, 다음 등)에 종사하던 사람들 일부도 속속 그 창업의 대열에 합류를 하거나 혹은 직접 아이디어를 가지고 창업을 하는 숫자가 현저히 늘어났다. 그러나,그들 대다수의 사업방향이 소셜과 모바일, 혹은 유무선게임에 너무 치우쳐져 있다는 점이 많이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다.

벤처 창업 자체에 관심을 갖고 기업가정신으로 무장하기 시작한 젊고 유능한 인재들의 숫자는 점점 늘어나고 있으나, 그들이 관심을 가진 사업의 분야가 너무 제한적이다 보니 제조업으로 창업한 기업에서는 젊은 인재 찾기가 백사장에서 바늘 찾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데 커다란 문제가 있다. 단말 하드웨어와 주문형 반도체, 검사장비, 네트워크장비 등의 제조업 분야는 사람을 구하려고 해도 인재의 대부분은 대기업에 몰려 있고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한 젊은 친구들은 제조 벤처에는 관심 조차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작년에 우리가 투자한 기업 중 하나는 직원들의 평균 연령이 45세가 넘는 아이러니한 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물론 경륜과 경험이 반드시 축적이 되어야만 가능한 개발 분야이므로 나이가 많은 것은 어쩌면 강점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그 기업도 새로운 인력을 수급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고생을 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미쯔비시총합연구소 (전) 마키노 노보루소장의 저서 ‘제조업은 영원하다'

미쯔비시총합연구소 (전) 마키노 노보루소장의 저서 ‘제조업은 영원하다’

일본의 가장 유력한 씽크탱크중 하나인 미쯔비시총합연구소를 설립하는 데 관여를 했던 (전) 마키노 노보루소장은 그의 저서  ‘제조업은 영원하다’를 통해 일본경제의 미래에 대해서 정확하게 진단을 내렸다. 그의 책은 1989년 일본 경제가 버블의 정점으로 치닫고 있을 때 발간되었으나 그의 경고를 받아들이지 않은 일본 경제는 그 후로 20년이 넘는 장기침체의 늪에 빠져 있다. 아니 이제는 침체라고 하기 보다는 차라리 더 이상의 ‘성장이 없는 경제’로 고착이 되어 버렸다는 말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그는 책에서 허업(虛業)인 금융을 통한 돈벌이에 혈안이 되어 있는 일본 경제가 위태로운 상태이므로 2차산업과 3차산업의 건전하고 균형잡힌 발전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그는 또 이공계학생들의 제조업 이탈 현상도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분석했다. 그의 걱정과 우려는 당시 일본의 상황을 잘 파악한 것 뿐 아니라 정확하게 20년이 지난 지금의 한국경제와 벤처생태계에 대한 해석으로도 의미가 각별하다고 본다. 그 책을 발간하기 20년 전에는 한 때 제조업쇠망론을 외치던 그가 제조업이야말로 나라의 중추가 된다고 때늦은 회한의 주장을 했지만 이미 늦은 셈이 되어 버린 것이다.

당시 책에서 마키노 노보루가 지적했던 우려는 20년이 지난 지금 바로 현실로 나타났다. 아래 표는 세계반도체산업을 이끌고 있는 10대기업이 20여 년의 시간차를 두고 어떻게 변했는가를 보여 주는 표이다. 특히, 다른 제조업과 비교를 하더라도 반도체산업은 그야말로 격변과 굴곡의 산업이라는 사실을 한눈에 알 수 있는 모습이다. 1989년에는 일본기업들이 1-3등이 죄다 일본기업이 차지하고 있었으며, 또한 자그마치 6개나 되는 기업들이 10위 안에 랭크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2011년에는 딱 2개 뿐이었고 그나마 2011년 5위를 차지했던 르네사스는 최근 미국의 사모펀드인 KKR에 지분이 매각되어 버렸으므로 이제는 딸랑 도시바 하나 뿐이다. 여기서, 미국의 반도체기업들의 부활은 다고 눈 여겨 볼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세계 반도체 기업 상위 10개사 매출 순위
순위 1989년 2011년
1 니혼덴키 인텔
2 도시바 삼성전자
3 히타치 텍사스 인스트루먼트
4 모토로라 도시바
5 후지쓰 르네사스
6 텍사스 인스트루먼트 퀄컴
7 미쓰비시전기 ST마이크로
8 인텔 하이닉스
9 마쓰시타전자공업 마이크론
10 필립스 브로드컴

미국 또한 한때는 일본과 똑 같은 고민을 했었다. 7-80년대를 거치면서 효율성과 생산성 저하를 이겨내지 못해 제조업 기반이 무너지면서 그 틈새를 금융산업을 통해 막아 보려 했던 것이 바로 미국 경제였다. 하지만 그러한 시도는 30년 금융주도경제 끝자락에 과잉유동성 문제라는 더 높은 파고를 만났고 결국 자산시장의 버블을 한 방에 터트려 버렸다. 2008년 금융위기를 촉발한 재앙의 진원지는 미국이 아니었던가 말이다. 지금의 미국경제가 그래도 유럽의 경우처럼 완전히 허물어지듯 붕괴를 하지 않고 버텨나가고 있는 힘의 근원은 어쩌면 IT정보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혁신적인 산업 분야의 생산성은 여전히 세계최고 수준을 자랑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아무튼, 엄청난 금융위기를 겪은 미국에서는 슬그머니 제조업 부활론이 다시금 힘을 받고 있다. 기하급수적으로 불어 난 무역수지적자 (2011년 GDP대비 무역수지 적자는 5,599억달러)를 해결할 유일한 대안은 현저히 약화된 제조업의 경쟁력 강화일 수 밖에 없다는 내부 반성에 근거한 노력들을 이제 시작을 하고 있는 셈이다. 덧붙여, 지속 가능한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서라도 제조업에 대한 관점 변화는 필연적이다. 참고로, 미국의 제조업 고용 비중은 1950년대 29.1%에서 2011년에는 8.5%까지 하락하였다.

앞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실로 오랜 기간 동안의 암흑기를 거쳐서 한국도 바야흐로 창업의 새로운 열기가 제법 유의미한 규모와 기간 동안 지속이 되고 있다. 너무도 바람직한 현상이다. 하지만, 특정한 산업분야에 집중이 된 창업은 결코 벤처생태계의 입장에서 본다면 바람직한 모양새는 아닐 것이다. 즉, 어떤 분야로의 쏠림 현상 보다는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의 다양한 도전들이 일어 났으면 한다. 그런 관점에서 제조업의 지속적인 성장은 국가의 경쟁력 제고 뿐 아니라 수준 높고 안정적인 일자리를 창출해 낼 수 있으며, 이는 결국 보다 안정적인 소비를 창출하는 동인을 부여하게 되는 것이다. 페이스북, 징가, 애플 등등으로 미국의 벤처생태계가 온갖 주목을 다 받고 있는 동안에도 바이오, 에너지, 항공우주산업, 신물질, 화학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관심과 창업, 투자가 결코 멈추지 않고 있는 것이 바로 미국 경제의 잠재적인 미래가치가 아닐까 한다.

결론적으로, 새로운 도전의 꿈을 꾸는 분들께 이런 말씀을 드리고자 한다. 물론, 국내의 소셜-모바일-온라인 게임의 창업 열기가 지속적이어야 하고 더욱 더 활발해지기를 바라는 바이다. 다만, 이미 그러한 분야가 치열한 경쟁으로 치닫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저 번득이는 아이디어만을 가지고 시장장악력을 키우며 성공의 방정식을 써 나가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남들이 하지 않고, 관심도 없고, 혹은 무언가를 이루어 내는 것이 결코 쉬워 보이지 않는 그런 일에 도전을 하는 것이 어떤가? 투자자의 입장에서 본다고 해도 보다 더 본질적으로 정보통신산업의 근간을 차지하며 경쟁도 덜한 ‘딱딱한 분야’ 또한 상당히 매력적인 투자대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도 창업자들은 꼭 기억해주기 바란다.

About the Author:
소프트뱅크벤처스의 투자업무를 총괄하고 있으며, 동시에 한국 내 지주회사인 소프트뱅크코리아의 대표이사도 겸직하고 있습니다. 소프트뱅크벤처스가 설립된 2000년 이후 지금까지 총 2,300억 원의 규모의 펀드들의 대표펀드매니저로서 운용하고 있으며, 투자 성공 사례로 Entelligent (Nexon, TSE:3659에 인수), 야후코리아 (Yahoo! Inc.,HSDQ:YAHOO에 인수), 그리고 키이스트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