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0억 벤처투자의 뒷 이야기

다음-카카오 합병으로 한참 시끄럽던 지난 5월 27일, 국내 자연어처리 솔루션 업체 CSLi가 프랑스 자연어처리 업체 Systran을 인수하였다는 발표를 하였다. 이번 인수 자금은 총 550억원 규모로 STIC, 소프트뱅크벤처스, 한국투자파트너스/증권에서 투자에 참여 하였다. 투자는 단지 시작일 뿐이고 앞으로의 성장이 더 중요하겠지만, 이번 투자 및 인수는 국내 벤처생태계에 여러모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사건이었다고 생각되어 시사점을 공유 해 보고자 한다.

Translations

 

CSLi와 Systran은 어떤회사?

CSLi는 지난 20년간 자동번역/자동통역 외길을 걸어온 한국 토종 업체로 국내에서 거의 유일하게 살아 남은 자연어 처리 업체이다. 2000년대 이후 다양한 업체들이 있었으나 현재까지 규모있게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업체는 CSLi 뿐이다. 오랜 기간 축적된 기술과 몇 번의 인수 및 기술이전을 통해 아시아권 언어 처리에 대해서는 독보적인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한편, Systran은 1968년 설립 된 세계 최초의 자동번역 업체로서 자연어처리의 상징과도 같은 회사이다.(자세한 설명은 링크 참조)  http://en.wikipedia.org/wiki/Systran

최근 몇 년 동안 두 회사는 협력을 하기 시작하여 삼성 갤럭시에 탑재되는 S-Translator를 공동으로 개발하기도 했다.

원천기술을 가진 글로벌 기업의 가치

550억원이라는 (아마도) 단일 투자로는 사상 최대 규모의 벤처투자가 이루어진 가장 큰 이유는 회사가 가지고 있는 자연어 처리 기술이 글로벌 시장을 대상으로 한 대단히 의미있는 요소기술이 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웨어러블/IoT 시대의 도래는 곧 인터페이스의 변화를 의미하며, 변화될 인터페이스의 핵심은 자연어 처리이다. 자연어처리의 일부분인 음성인식만을 전문적으로 처리하는 Nuance의 시가총액이 USD 5.4B라는 것만 보아도 자연어 처리의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향후 감정인식, 자동 통번역, 문서 요약 등 수많은 자연어 처리 기반 기술들이 대중화 될 것이며 CSLi/Systran이 글로벌 선도 업체가 될 수 있다면 충분히 현재의 투자금액과 기업가치를 정당화 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또한, 이 투자금을 활용하여 인수한 Systran은 세계 최고의 브랜드와 기술력을 이미 인정받아 왔던 회사이다. 인수, 상장, 리쿠르팅 등 경영의 모든 영역에 걸쳐 글로벌한 브랜드와 영향력을 가지고 운영이 가능한 회사이며 나스닥 상장, 구글 등 주요한 글로벌 기술기업과의 M&A 등이 충분히 가능한 회사라고 판단했다. Systran인수를 통해 CSLi가 보유하고 있는 기술력 역시 글로벌 시장에서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시스트란

 

스타트업의 Crossboarder M&A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국내 벤처생태계는  ‘돈은 구하기는 쉽고 국내에서 할 것이 많지는 않은’ 현상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국내에서 일고있는 사모펀드, 벤처투자 붐의 뒤에는 세계 4대 연기금인 430조원 규모의 국민연금과 각종 연기금들이 있으며, 국내 주식 시장과 부동산 시장의 정체로 인해 연기금들의 대체투자에 대한 필요성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반면, 2030년이 되면 국내 생산가능 인구가 10% 감소한다는 전망이 있을 정도로 한국의 인구성장 정체는 심각한 수준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해외 M&A를 통한 성장은 일정 수준의 규모에 이른 국내 벤처기업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고려해야할 성장전략이 될 것이다.

실제로 소프트뱅크벤처스의 포트폴리오 회사인 팬엔프리(PNF)도 경쟁업체인 미국의 루이디아를 인수하여 북미 시장 경쟁력을 확보하였으며, 소셜커머스기업인 쿠팡 역시 실리콘밸리 기업인 ‘캄씨를 인수하여 기술력을 강화하였다. 이미 해외 M&A는 더이상 대기업의 전유물이 아닌 것이다. CSLi의 Systran 인수는 이러한 움직임의 본격적인 시작이며 의미있는 성과를 창출한다면 많은 국내 벤처기업들의 벤치마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벤처정신

투자 소식이 보도된 후 ‘대체 이렇게 훌륭한 회사를 어떻게 인수하였냐?’ 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이에 대한 가장 큰 해답은 경영진의 진정성과 불굴의 실행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인수 성사의 배경에는 무엇보다도 양 사 경영진의 우정이 있었다. Systran은 가족기업으로 연구 중심적으로 경영되고 있었으며 미 국방성 등 핵심 클라이언트를 중심으로 사업을 운영하면서 확장에는 관심이 없는 회사였다. CSLi와 S-Translator를 함께 개발하면서 양 사 간에는 기술력과 역량에 대한 신뢰가 싹트게 되었고 CSLi 측에서 먼저 인수를 제안하였다.이 과정에서 Systran은 CSLi와 같은 공격적인 파트너를 통해 그들이 보유한 고도의 자연어 처리 기술을 더욱 널리 알릴 수 있고 이것이 ‘인류를 언어의 장벽에서 자유롭게 하자’ 라는 Systran의 창업 정신에 더 부합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에 호응하여 CSLi는 자연어 처리의 원조인 Systran의 역사와 기술력을 존중하고 그들의 유산을 물려받는다는 의미에서 20년간 이어온 사명을 버리고 Systran International로 사명을 변경하기로 하였고 Systran 경영활동의 자율성을 보장하였다. 이 전 과정에서 CSLi의 진정성있는 접근은 Systran 경영진의 마음을 여는 열쇠가 된 것이다.

인수 과정은 사실은 만만치 않았다. 국내 벤처기업인 CSLi가 수백억 규모의 Crossboarder M&A를 한다는 것은 가히 정주영 회장이 거북선 그림으로 배를 팔아온 것에 비견할 만 한 ‘하면된다’ 정신의 전형이었다. 문화적 차이, 물리적 거리, 언어의 장벽을 해결하며 어렵고 민감한 협상 과정을 모두 돌파해 온 것은 경영진의 불굴의 의지가 없었으면 절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인수 후 PMI는 현재까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Systran의 경영활동에는 어떠한 변화도 없이 완전히 독립성을 보장받고 있으며 이러한 가운데 양 사의 전면적 협업 하에 다양한 R&D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벤처캐피탈의 역할

이번 투자에는 STIC, 소프트뱅크벤처스, 한국투자 파트너스&증권 이 참여하였다. 큰 금액 투자였기 때문에 공동투자사간 신뢰와 호홉이 중요했는데 다행히도 오랜 기간 국내에서 다양한 투자 활동을 수행해 온 세 개 회사의 신뢰에 기반하여 무사히 투자를 마칠 수 있었다. 국내 투자 기업들이 여전히 부족하다고 평가받는 ‘Value Add’와 ‘Risk Taking’이라는 관점에서도 세 회사가 모두 노력하고 있다.

실제로, 소프트뱅크벤처스는 소프트뱅크그룹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이용하여 소프트뱅크모바일, 스프린트 등과의 해외 사업 기회 발굴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STIC은 최대 투자자로서 Systran 인수 과정 전반을 회사와 함께 진행하였으며 계약서 협의, 실사 등 모든 인수 과정에서 주체적으로 참여하였다. 한국투자파트너스는 계열사인 한국투자증권을 투자 컨소시엄에 참여시켜 상장을 대비하기 위한 내부통제시스템에 대한 컨설팅을 지속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투자라는것이 늘 미래를 장담할 수 없고 시작보다는 결과가 중요하다. 하지만 이런 의미있는 도전에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것 자체가 큰 배움의 기회이고 벤처캐피탈리스트로서의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계기인 것 같다. 다음 포스팅은 Systran International의 나스닥 상장을 지원하면서 느낀점을 공유해 보도록 하겠다. 한 3년 쯤 후에!

About the Author:
현재 소프트뱅크벤처스에서 수석심사역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이전에는 맥킨지 앤 컴퍼니에서 국내 주요 대기업의 전략 수립, 해외 진출, 인수 합병에 관련된 다양한 컨설팅 프로젝트를 수행 하였습니다. 소프트뱅크벤처스에서는 아이디인큐, 드라마피버, 코코네 등 한, 미, 일의 다양한 IT Start-up에 400여억원 상당의 투자를 집행하였습니다. 회사를 위해 가치를 창출하는 신뢰받는 투자자가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