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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눈물

컬럼&캐스트 l 2010/06/30 17:40 by uncle venca

지난 주에 두 명의 남자가 눈물을 흘리며 우는 모습을 지켜 보았다. 하루를 사이에 두고 한 남자는 서럽게 통곡을 했고, 다른 한 남자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첫번째 남자의 울음은 아마도 이미 전국민이 함께 지켜 보았기 때문에 새삼스럽게 다시 얘기하기가 다소 저어하다. 하지만 그 남자의 울음이 아직도 짙은 잔상으로 남아 있기에 다시 떠올려 보고 싶다. 그 남자 차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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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연합뉴스

8강의 문턱에서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는 마지막 순간까지, 남아있는 배터리 잔량을 추호도 생각하지 않은 채 차두리는 최선을 다해 뛰었다. 그리고 추가시간으로 주어진 3분마저도 끝나고 주심의 휘슬이 울리던 순간! 차두리는 그라운드에 누웠고, 누군가에 의해서 일으켜 세워졌고, 그 즈음에 시작된 울음은 급기야 거의 통곡으로 변했고, 지켜 보는 이들을 가슴 저미게 만들었다. 정무 감독을 포함해서 다른 선수들도 울었지만 차두리의 울음은 남다르게 느껴진 이유가 무엇일까?

 

차두리선수는 늘 밝고 맑았다. 2006년 대표선수명단에 본인의 이름을 올리지 못했을 때도, 그의 국가대표선발은 그의 아버지에 대한 배려 때문이라는 얘기가 들릴 때도, 시중의 온갖 비아냥과 조롱과 개그소재가 되어 버린 상황에서도 그는 늘 명랑하고 낙천적인 모습이었다. 많은 신세대 선수들이 늘 얘기하듯이 월드컵본선을 즐기는 마음에서 참여를 한 듯 훈련 때도 웃었고, 인터뷰 때도 웃었다. 그랬던 차두리가 통곡을 하였다. 비와 땀에 범벅이 된 유니폼 상의를 끌어 올려서 눈물을 훔쳐야 할 정도로.

 

그 장면을 보면서 미안함이 엄습해 왔다. 야 임마! 내가 차도 그 정도는 하겠다. 너는 왜 공은 안 보고 뛰기만 하냐? 도대체 위치선정이 그게 뭐냐?라며 쏟았던 비난이 참으로 한심스럽고 민망스러워져 버렸다. 그의 울음이 16강에 멈춰선 대한민국의 축구에 대한 아쉬움을 다 가셔 주지는 못했지만, 그의 울음을 보면서 사람을 그냥 너무 내가 가지고 있는 단편적인 정보와 생각과 편견만을 가지고 대하면 절대로 안되겠구나 하는 깨달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차두리선수가 너무 고맙다.

 

또 다른 한 남자의 울음!

 

지난 25일 일본 동경에서는 있었던 소프트뱅크의 주주총회에서 손정의회장은 일반안건 처리와는 별도로 2시간 가량을 할애하여 소프트뱅크의 30년 계획에 대한 발표를 하는 시간을 가졌었다. 그 발표의 일본어 원문 링크는 http://webcast.softbank.co.jp/ja/press/ ··· dex.html 이고, 혹시 영어가 편하신 분은 동시통역링크인 http://webcast.softbank.co.jp/en/press/ ··· dex.html 를 보시면 된다. 가급적이면 일본어 원문 사이트를 보시라고 권유를 하고 싶다. 그리고 번역을 해서라도 올려 드리지 못함을 너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2시간가량의 30년 계획 발표의 말미에 손정의회장은 그야말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그의 할머니에 대한 회상을 시작하면서 그의 두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는 억지로 눈물을 훔치지 않았고, 그냥 그렇게 울먹이면서 발표를 마무리했다. 마지막으로 뒤에 띄워진 여자아이의 사진을 뒤로 하고서 그는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 무대를 떠난다. 아래는 연설 전문 중에서 후반부를 정리해 본 것이다. 연설문이므로 말이 조금 끊어지는 느낌이 있으나 문맥 전체를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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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지금은 돌아가신 그의 할머니이다

 

저는 무번지에서 태어났습니다.

 

나에게 있어서는 소중하고 소중한 분입니다. 14살에 일본에 건너왔고, 14살에 결혼했습니다. 상대는 37살인 저의 할아버지. 그녀는 나의 할머니입니다.(이 때 할머니 사진이 올라 온다)

도중에 전쟁도 체험했습니다. 살아있는 것도 겨우 일 만큼 더러운 물을 마시고, 굶주림으로부터 아이들을 지켜내오며 열심히 살아오셨습니다. 일본에서 한국국적으로, 말도 어눌하고, 아는 사람도 의지할 사람도 없이 14살에 건너왔습니다. 14살은 아직 애지요. 중학생입니다. 혼자서 낯선 나라에 왔다는 것 자체가 힘들었을 것 입니다. 그리고 저의 아버지와 어머니! 아버지는 중학생 때부터 가족을 경제적으로 책임지며, 열심히 일하신 분입니다.

매우 힘들고 힘든 생활 속에서도 소주를 만들었고 돼지를 길렀습니다. 어떻게든 살아왔습니다. 그런 중에 제가 태어났습니다. 1957년에제가 태어났을 무렵에는 조금은 살아갈 정도가 되었지만 그래도 함석지붕의 너덜너덜한 부락의 집에 살고 있었습니다.

나의 호적은 사가현 *** 도로 번지로 쓰여있습니다. 아무리 무번지라도 일부러 무번지라고 쓰지 않으면 좋을텐데불법거주이기 때문에, 자기 땅이 아니라, 국철의 선로겨드랑이의 공터에 함석지붕에 판자를 붙여 살았기 때문에 정식으로 호적을 인정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무번지에서 태어났습니다.

난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만, 3,4세 무렵 할머니가 저를 매우 귀여워해주었습니다. 매일 산책에도 데리고 가주시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열심히, 정말 열심히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언제나 집에 없었습니다. 나를 돌봐준 것은, 할머니였습니다. 매일 할머니가, ‘마사요시야(한국어로 야) 산보가자’라고 하시면, 나는 기뻐서 할머니를 따라갔습니다

할머니가 산책 갈 때는 리어카를 타고 매달려 갔습니다. 별로 말하고 싶진 않지만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거무스름한 리어카가 미끄러집니다. 그 리어카는 드럼통을 반으로 잘라, 34개 쌓아두고, 거기에 기르고 있는 돼지의 먹이, 잔반이 같이 올려져 있습니다.
역전근처의 식당에서 잔반을 받아다가, 그것을 모아서 돼지 먹이로 씁니다. 나는 어렸기 때문에, 리어카를 타는 것만으로 즐겁게 갈수 있었습니다. 단지 어딘지 모르게 미끌미끌하고, 썩은 냄새 같은 게 나면서, 비 온 뒤에 울퉁불퉁한 길에서 웅덩이에서 미끄러지면 떨어져 죽겠구나라고 생각하면서, ‘꽉 붙잡아라라는 말을 들으며 매달려 있었습니다.

 

할머니를 정말 좋아했습니다. 그날들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어른이 되어서, 지금 보면, 리어카 같은 것은 타고 싶지 않습니다. 창피합니다. 그렇지만, 그땐 어렸기 때문에, 아이였기 때문에, 별로 부끄럽거나 싫지 않고, 즐거웠습니다. 그 후, 조금씩 머리가 크면서, 그렇게 좋아했던 할머니가, 아주 싫어지게 되었습니다. 왜 그렇게 싫었냐면, ‘할머니 = 김치, 김치 = 한국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것과 관련되는 여러 가지, 살아가는데 괴로운 일들이 있었습니다. 별로 예를 들고 싶진 않지만….역시 괴로운 일이 많았습니다. (참고로, 그의 전기에 보면  이지메를 수없이 많이 당했다고 한다) 그런 괴로운 일들을 피하려면 역시 숨을 죽이고, 숨어있듯이, 일본이름으로 살아가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더욱 더 콤플렉스가 되었습니다.

 

그런 시기에, 제 아버지가 피를 토해 입원을 했습니다. 가족의 위기였습니다. 1살 연상인 형은 고교를 중퇴하고, 울면서 지내던 어머니를 도와, 아버지의 입원비, 집안 써포트를 하는 어머니도 열심히 일했습니다. 나에게 있어서는, 이미 주저 앉은 것 같은 가족의 위기였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극복하지 않으면 안된다. 어떻게 해야 될까…나는 그때, 사업가가 되겠다고 각오를 다졌습니다. 일시적인 해결책이 아니라, 가족을 유지시킬 수 있는 사업을 일으키겠다 라고 중학생 때 각오를 다졌습니다.

 

손정의라는 이름으로, 모든 인간은 함께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그리고 그 때, ‘료마가 간다를 읽었습니다.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주눅들어 우물쭈물하던 제 자신이 한심했습니다. 인종이라든지, 그런 사소한 것으로 고민하고 있었던 것 자체가 내가 작은 인간이었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래서 사업가를 목표로, 미국에 가자!, 미국에 건너가자고 결심을 합니다. 일본을 벗어나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울었습니다. 친구나, 선생님도, 모두가 말렸습니다. 할머니가 걱정된다며 가지 말라고 울고 울고 울었습니다. 어머니는 매일 울었습니다. “가지 말아라, 그렇게 알지도 못하는 무서운 곳에 가지 말아라, 가면 돌아오지 못하게 될꺼다”
하지만 나는 뿌리치고, 미국에 가서 사업가가 되는 ‘보석’을 찾아오겠다고. 그래서 무엇인가를 잡고, 일본에 돌아와 사업을 일으키겠다고, 반드시 가족을 지탱해내겠다고 말했습니다.

친척아저씨, 아줌마, 사촌들에게도 만류의 말을 들었습니다. “마사요시, 넌 냉정한 녀석이다. 아버지가 피를 토하고 살지 죽을지 모르는 판에, 아버지를 두고, 혼자서 미국에 가다니, 너 자신만을 위해 가는 것이냐’ 라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반박했습니다. “그런 게 아닙니다. 가족을 지켜내고 싶기에 가는 것입니다. 하는 김에 한가지 더 얘기한다면, 지금까지 제가 고민해온 국적이라는 것, 인종이라는 것, 똑같이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나는 훌륭한 사업가가 되어, 손정의라는 이름으로, 모든 인간은 함께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겠습니다”고 마음에 맹세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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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심을 하고서, 할머니에게 말했습니다. (이 때부터 손정의회장의 두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기 시작합니다)할머니, 미안해요 그렇게 나에게 상냥하게 해준 할머니를 나는 정말로 싫다고 말해 버린 것이 너무 죄송해요. 할머니, 나를 한국에 데려가 주세요. 제가 그 동안 애써 피해온 선조의 나라를 보고 싶습니다. 한국에 데려가 주세요라고.

할머니와 함께 둘이서 2주정도 한국을 돌았습니다. 할머니도 기뻐해주셨습니다. “마사요시, 네가 함께 한국에 가 보자고 해서, 겨우 한국에 가겠다는 마음이 생겼다”고. 그렇게 할머니와 두 명 이서 한국에 갔습니다.

전기도 아직 나오지 않는 작은 마을에서, 비옥하지 않은 토지라 사람도 적고, 양초를 켜고 먹는 식탁. 하지만, 모두들 촛불로 켠 컴컴한 식탁에서 새까만 치아를 보이며 활짝 웃어주었습니다. 할머니는 우리들의 헌 옷등을 일본에서 가져 가셔서, 그 마을의 아이들에게 선물로 건네주었습니다. 선물을 받은 아이들은 만면의 미소로, ‘고맙습니다. 예쁘네요. 일본 옷은 예쁘네요’라고 하며 받았습니다. 그때의 할머니의 웃는 얼굴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 아이들의 웃음은 바로 다른 사람 덕분입니다. 아무리 괴로운 일이 있어도,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누군가가 도와줍니다. 그러므로 절대로 사람을 원망하여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 덕분이므로. 나는 회사를 시작한지 2년 만에 큰 병을 얻어 입원했습니다. 이대로 죽는구나 생각했습니다. 돈도 아니고, 지위나 명예도 아닙니다. 할머니가 해준 것처럼 기뻐해주는, 넝마 같은 것에도 기뻐해주는그런 일에 공헌할 수 있다면 행복하겠다고. 입원했을 때에 점점 더욱 절실하게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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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어린여자아이 사진이 올라 옵니다.)

만난 적도 없고, 본적도 없고, 이름도 모릅니다. 캄보디아인지 어딘지의 작은 여자아이가 흙 묻은 얼굴로, 사과1개를 받고, ‘고맙습니다’라고 합니다. 무언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여, 누구에게 감사해야 좋을지 모를 정도로 , 마음속에서 ‘감사합니다’라고..
그렇게 공헌할 수 있다면 행복하겠습니다.

이름도 모르는, 그저 단 한 명의 아이가 기뻐해주었으면 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의 연설은 그렇게 끝이 난다. 열심히 하겠다는 인사말로

그의 울음을 해석하거나 평가하거나 의미부여를 하는 것은 너무 건방진 일인 듯 하여 굳이 부연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일본 최고 부호 중 한 사람이, 당대 최고의 기업가 중 한 사람이, 2만 명의 부하직원들과 5백 개가 넘는 관계사의 대주주로 있는 한 사람이 그와 그의 회사의 30년 계획을 발표하면서 눈물로 발표를 마무리 한 것은 그가 발표한 계획이 정말로 진솔하고 결의에 찬 것임을 선명하게 보여 주었다는 사실만은 꼭 얘기하고 싶다. 그가 왜 트위터로 소통을 하는 것에 몰두하는지, 왜 회사 30년 계획을 전세계에 유스트림으로 생중계를 했는지, 그리고 왜 그는 울었는지는 2시간의 연설을 다 보시면 아실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그의 발표에 대해 어떤 일본 사람이 트위터에 올린 글인데 정말로 딱 적합한 평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옮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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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30년 비전」을 보았다. 소프트뱅크주주도 아니고, docomo 유저이고, Hawks 팬도 아니고, 검색은 Google파이지만, 솔직하게 감동했다.

2010/06/30 17:40 2010/06/30 17:40

얼마 전 창업투자회사 사장단 모임이 제주도에 있어서 참석을 했었다. 오랜 만에 뵌 반가운 분들도 있었고, 또 요즘 창업투자의 열기가 조금씩 되살아나는 느낌도 있고 하여 다소 경쾌하고 즐거운 이틀간의 모임을 하고 돌아 왔다. 그런데 모임의 중간에 어떤 분이 어이, 문대표! 소프트뱅크는 왜 한국기술투자 (KTIC)를 인수한거요?라고 물어 오셨다. 그 동안 수 차례 똑 같은 질문을 지인들로부터, 또 언론사 기자들로부터, 심지어는 처음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받아 왔기 때문에 별로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게 설명을 해 주었다. 저희가 아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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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
년 초반부터 한국에는 2개의 소프트뱅크가 있어 왔다. 1991년에 설립된 소프트뱅크코리아가 모태가 되어 2000 2월에는 소프트뱅크벤처스라는 창업투자사가, 2002 8월에는 소프트뱅크커머스코리아라는 IT유통회사가 출범하였었다. 3회사는 일본소프트뱅크주식회사가 직접적으로 지분을 가지고 있는 회사들이며 지금 한국에서 소프트뱅크라는 브랜드를 사용할 수 있는 회사들이다. 이 회사들과는 별도로 2000년 말 경에
소프트뱅크파이낸스코리아라는 회사가 설립되었었다. 이 회사는 본사인 일본소프트뱅크주식회사의 자회사였던 소프트뱅크인베스트먼트 (SoftBank Investment Corp, SBI)의 또 다른 한국 내 자회사로 설립이 되었으며, 주로 기술벤처투자를 제외한 분야를 중심으로 한국에서 투자 활동을 해왔다.

 

여기서 잠깐 SBI라는 회사에 대해서 알아 보자. SBI의 사장이었던 Yoshitaka Kitao씨는 90년대 중반에 근무하던 노무라증권을 떠나서 소프트뱅크그룹의 CFO로 재직을 시작하게 된다. Kitao씨의 역량과 노력으로 손정의 회장의 지갑은 두둑해졌고, 그 자금으로 야후에 대한 투자를 비롯하여 대규모로 인터넷기업들에 대한 투자 및 인수합병을 추진하였다. 1999 7월 경, 너무 비대해진 기업의 관리와 통제를 위해 (당시 소프트뱅크가 직간접적으로 투자를 했던 기업의 숫자가 거의 천여 개 이었으므로) 일본소프트뱅크본사 아래에 5 개의 중간지주회사 (Sub-Holding Company)를 두게 된다. 그 중에 하나가 SBI였으며, Kitao씨는 그룹 CFO의 직위를 벗고 SBI의 대표를 맡게 된다. Kitao씨는 손정의회장과는 달리 인터넷벤처, 기술기반벤처 등에 사실상 큰 관심을 두지 않았었고, 오히려 투자의 다른 영역인 바이아웃 (Buy-out), 부동산개발투자, 채권투자, 불량자산투자 (NPL)등에 대한 관심이 더 컸었기에 2005 7월 회사 이름을 아예 SBI Holdings라고 바꾸었고, 그 이듬해인 2006 8월 당시 일본소프트뱅크가 보유했던 지분 전량을 Kitao씨가 사들이면서 계열분리를 하게 된다. 그와 동시에 소프트뱅크라는 브랜드는 더 이상 사용 하지 못하게 되었고, 회사 이름은 그대로 SBI로 사용했지만 SBI Strategic Business Innovator를 줄인 말이라고 공표 하였다. 자세한 회사의 연혁은 http://www.sbigroup.co.jp/english/compa ··· ory.html자세히 나와 있으니 참고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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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년 전에 사석에서 한국기술투자 (KTIC)의 전 대주주였던 서모 회장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 분이 나에게 우리가 소프트뱅크로부터 투자를 받게 되었는데 앞으로 잘 해 봅시다라고 한 적이 있다. 물론 그 자리에서도 나는 SBI는 더 이상 소프트뱅크와는 관계가 없으며,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마치 CJ가 어떤 회사에 투자를 했는데 그것을 삼성이 투자를 했다고 하시는 것과 같다고 대답해 준 적이 있다. 아무튼 그 이후에도 서모 회장은 지속적으로 소프트뱅크와 손을 잡고 KTIC를 성장시켜 나갈 것이라고 공공연하게 얘기를 하고 다녔었기에 많은 분들이 아직도 그렇게 알고 계신 듯 하다. 아마도 서모 회장은 이런 저런 정황을 설명하기가 다소 복잡하고, 더군다나 SBI의 역사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설명을 하는 것이 말하자면 말이 길어질까 봐서그냥 소프트뱅크한테 투자를 받았다고 얘기를 한 것이 아닐까 한다. 하여간, 우여곡절 끝에 서모회장은 소프트뱅크라고 믿고 있던 그 SBI와 다툼 끝에 그간 가지고 있던 지위를 빼앗기고, 아직도 민사상의 법적인 공방을 벌이고 있다고 알고 있다.

 

한국에는 더 이상 소프트뱅크가 두 개가 아니다. 물론 소프트뱅크코리아의 자회사로 있는 소프트뱅크벤처스와 소프트뱅크커머스는 있지만 그 뿌리는 하나다. SBI Korea가 인수를 한 KTIC는 소프트뱅크와는 그 어떤 지분 관계도 인적 관계도 없는 회사이다. 다만, KTIC는 소프트뱅크코리아의 경쟁기업이자 혹은 우호적 공동투자자일 것이다. 원래 창업투자회사는 모두가 적이자, 모두가 동지이다. 투자를 위해 경쟁을 할 때는 적이며, 배짱이 맞아서 공동으로 투자를 하게 될 때는 동지가 되는 셈이므로. 많은 논란과 쟁송 끝에 KTIC의 대주주가 된 SBI Korea의 앞날에 늘 좋은 일들만 생기기를 바라 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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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20 17:46 2010/05/20 17:46

딸랑 1표의 철학

컬럼&캐스트 l 2010/05/11 11:30 by uncle ven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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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면 1

전화벨이 울린다. 모르는 번호지만 무심결에 받았다. 들려오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4년여 전 쯤에 투자를 받으려고 몇 번의 공식적인 미팅을 했던 사람이라고 자기가 우긴다. 이름은 살며시 기억이 난다. 그가 4년 만에 전화해서 한 대화는 다음과 같다. 그의 가명을 홍길동이라고 하자.

 

길동대표: 어이 문대표, 잘 지냈죠? 오랜만이군요. 제가 말이죠 회사를 하나 만들어서 투자를 받아야 하는데 문대표에게 기회를 줄라구요. 뭐 아이템은 나중에 설명해 줄께요. 아주 엄청난 기술이에요. 아무튼 내일 한 번 봅시다. 사무실로 찾아 갈께요. 언제가 좋아요?

엉클벤카: (조금 머뭇거리면서) 아 네, 잘 지내셨나요? 어떤 기술을 가진 회사인지 궁금하네요. 아무튼 먼저 간략한 소개서를 보내 주시면 저와 함께 일하는 심사역과 검토를 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나서 미팅은 잡도록 하시죠?

홍길동대표: 나 원 참선수들끼리 왜 이러시나? 그냥 문대표가 보고 딱 결정해 주면 되지. 심사역들이 뭘 안다고 그래요. 괜히 시간낭비 하지 말자고. 20억 정도 밖에 안되니까 바로 결정해 줄 수 있는거지요?

엉클벤카: (많이 머뭇거리면서) 아 네, 그래도 우선 회사와 기술에 대해 알 수 있게 1페이지 짜리라도 좋으니 정리된 소개서를 좀 보내 주시면 보고 나서 바로 연락 드릴께요.

홍길동대표: 거 참 딱 보면 놀라서 기절을 할 정도로 대단한 거라니까그런 엄청난 기술을 어떻게 1페이지 짜리 글로 설명이 된다는건가요? 일단 만나서 얘기합시다. 낮에 안되면 저녁에 쏘주라도 하면서 얘기해도 되고

엉클벤카: 죄송합니다. 제가 지금 앞에 손님이 와 계셔서바로 연락 드릴께요.

 

그리고 6개월 째 연락을 안 했다. 다시 연락이 오면 뭐라고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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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면 2

전화벨이 울린다. 국제전화번호이다. 일본 본사일 확률이 높으므로 받는다. 역시 일본 본사의 자회사 중 하나인 소프트뱅크모바일의 부장이다. 우리가 한국에서 투자한 회사의 기술이나 서비스를 본사에 소개를 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사람이다. 그의 가명을 나카무라부장이라고 하자.

 

나카무라부장: 오랜 만입니다. 별일 없으시죠? (완전히 일본식 말투다) 제가 회사를 하나 소개를 드리고 싶은데 어떻게 괜찮으시겠습니까? 혹시라도 불편하시면 소개를 드리지 않아도 됩니다.

엉클벤카: 아 잘 지내시죠? , 저희들이야 좋은 회사 소개를 받으면 너무 좋죠. 어떤 회사입니까? 한국에 있는 회사인가요?

나카무라부장: 아 네, 그렇습니다. 제가 아는 후배의 친구가 재일교포인데 그 사람의 선배가 이번에 회사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얼마 전에 일본에 오셔서 함께 식사도 하고, 술자리도 했었는데 들어 보니까 괜찮아 보여서요.

엉클벤카: 연락처를 주시면 전화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연락처를 받아서 전화를 했다. 그의 가명을 김길동대표라고 하자.

 

김길동대표: 아 안녕하세요. 일본본사에서 지시를 하신 것 때문에 전화를 주신건가요?

엉클벤카: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지시를 받은 적은 없지만 아무튼) , 나카무라부장이 좋은 기술을 가진 회사라고 해서 궁금해서 연락 드렸습니다.

김길동대표: 그러시군요. , 본사에서 워낙 관심을 가져 주셔서 본사에서 투자를 받으면 되겠다 싶었는데그래도 투자하실 의향이 있으시면 2주안에 결정해 주시죠. 이번에 한 50억 정도 투자를 받아서 해외진출을 하려고 합니다.

엉클벤카: . 그럼 제가 사무실에 가든지, 아니면 저희 사무실에 오셔서 간략하게 회사 소개를 좀 해 주시겠어요?

김길동대표: 아 제 말뜻을 이해를 못하셨군요. 본사에서 이미 결정을 하신 일이니 그냥 돈을 입금을 해 주시면 될 것 같은데본사에서 좋다고 했으니까 회사에 대한 내용이야 그 쪽을 통해서 들으시면 서로 시간낭비 안하고 좋겠지요?

엉클벤카: 그렇군요. 그럼 제가 나카무라부장하고 상의를 해서 연락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에게 연락을 안했다. 최근에 몇 번 김길동대표가 몇 번 전화를 주었는데 답을 안했다. 세상이 자꾸만 나를 너무 옹졸한 사람으로 만들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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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랑 1표뿐입니다

 

회사를 설립하면서 투자의사결정에 대한 논박을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서 했었고, 그렇게 해서 결정하였던 원칙을 아직까지 지키고 있다. 그 투자의사결정의 원칙은 다음과 같다. 만장일치 파트너 각자 1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몇 가지의 수정이 있었다. 헌법도 고치는 것처럼. 예를 들면, 단독투자인 경우는 만장일치이지만 공동투자자가 있으면 (상대적으로 투자 리스크를 분담하는 의미가 있으므로) 3분의 2의 가결이 있으면 된다. 그리고 1, 2차 투심위로 나누어서 결정을 할 때 1차 투심위는 심사역들 각자가 투표권이 있으며, 2차최종투심위는 심사역 그룹 전체가 1표를 가지게 하였다. 아무튼 결론은 대표이사인 저도 딸랑 1표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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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창업투자회사가 미국처럼 파트너기업 (LLC, Limited Liability Corporation, 유한책임회사)인 경우가 많지 않고 대부분 주식회사의 형태를 띄고 있다. 더군다나 소프트뱅크벤처스처럼 이른바 기업형창업투자사 (Corporate Venture Capital)은 파트너제도를 원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대표이사가 있고 상명하복식 시스템도 많이 있는 편이다. 그러나 우리는 창업초기부터 기본적인 운용철학을 함께하는 투자에 두고서 파트너 1인당 1표의 권리는 주었고, 심지어는 심사역들도 간접적으로 본다면 비토권을 가지게 된 셈이다. , 단독투자로 2차투심위까지 갔을 때 심사역그룹이 가진 한 표는 casting vote가 되는 것이다. 딸랑 1표의 권한 밖에 없는 나에게 여전히 기존의 패러다임으로 사회를 이해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너무 가혹한 요구를 하는 것이라고나 할까?

 

오늘 이 글을 읽고 나서 많은 사람들이 나를 무시하고 외면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위에서 언급한 홍길동, 김길동 같은 사람들은 제발 나를 무시하고 외면하고 멀리하기를 진심으로 원한다. 물론 나는 소중한 나의 1표를 행사하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서 회사의 기술에 대해서 검증해 보려고 하고, 경영진들의 역량과 품성과 열정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평가해 보려고 노력을 한다. 그 딸랑 1표의 의사를 표시하는 것이 차라리 대표이사의 권력으로 결재하듯이 의사결정을 하는 것 보다 수 만배 어렵더라도 그 원칙은 지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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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11 11:30 2010/05/11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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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 12일은 여전히 한국경제의 거인으로 남아 있는 호암 이병철회장의 탄생 100주년이었다. 그 즈음에 그의 업적을 기리고, 또 재평가하는 다양한 작업들이 삼성그룹 내 뿐만이 아니라 학계나 언론계에서 다양하게 진행이 되고 있는 것 같다. 삼성그룹과 이병철회장의
한국현대사에서의 입지에 대해서는 왈가왈부를 할 사람들은 무척 많을 듯 하지만, 지금 현재 삼성이 한국경제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을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모든 일에는 늘 명암이 있는 법이니까하지만 오늘은 호암 이병철 전삼성그룹 회장의 밝은 면 중에 하나만 얘기해 보고자 한다.

 

이병철회장이 삼성전자를 창업 이후에 새로운 분야에 진출하기로 결정한 매 시기마다 한국의 전자산업 전반에 드리워져 있던 일본의 그늘은 짙디 짙었고, 그 그늘을 걷어 내기는 결코 쉽지가 않았다. 그러나 만약 이회장이 저 세상에서 지금의 삼성전자를 보고 있다면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지금의 삼성전자의 모습을 정확하게 예측한 바 있으므로 역시 나는 대단하군!이라고 할까?

 

삼성전자가 이른바 글로벌전자기업의 절대강자였던 소니를 이겨내기 시작한 것도 채 10년이 되지 않는다. 어찌 보면 소니는 아날로그시대를 정복했던 전자기업이었으나 디지털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절대적인 지위를 잃어버리기 시작하여, 마침내 군주의 자리를 삼성전자에게 내어 주게 되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지금 삼성전자를 먹여 살리는 것은 아날로그가 아닌 디지털이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디스플레이, 모바일기기, 심지어는 아날로그였던 TV까지 삼성이 만드는 것의 거의 대부분은 디지털이다. 이 디지털의 중심에 바로 반도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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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그 혼란하고 어수선했던 한국을 잠시 떠나 일본에 체류하면서 호암은 많은 전문가들을 만났다고 한다. 그 사람들 중 하나였던 한 미래예측전문가로부터 이런 얘기를 듣게 된다. 일본이 살 길은 컴퓨터, 반도체, 신소재, 광통신, 우주공학, 해양공학, 유전자공학 등 고부가가치 산업을 어떻게 성장시켜 나가는가에 달려 있다는 말을일본이 살 길과 한국이 살 길이 어떻게 다르단 말인가? 이를 들은 호암은 그 이후 3년이 넘는 연구, 조사, 자문의 과정을 거쳐서 결단을 내리게 된다. <호암자전>이라는 책에는 그러한 과정에 자세히 나와 있다고 한다.

 

아무튼 그가 혼신의 힘을 다해 반도체산업을 일으키기로 마음을 먹었을 때, 과연 주위의 반응을 어떠했을까? 감히 예측하건대, 모든 임원들이 처음에는 목소리를 내어서 반대를 했을 것이고, 막상 기흥에 공장을 짓기 시작했을 때는 반대의 의견을 입에서 우물거렸을 것이고, 사업을 시작한 1984년부터 4연 연속해서 손실을 보았을 때는 머리 속으로 반대를 했을 것이다. 그 반대논리의 중심에는 과연 무엇이 있었을까? 아마도 반대를 했던 사람들은 지극히 분석적이고 이성적이었을 것이다. 그 시기에 세계반도체시장은 딱 두 나라가 점유하고 있었다. 다름 아닌 미국과 일본! Intel을 비롯하여, Texas Instruments, National Semiconductor, Motorola, IBM 등등 당시에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미국의 절대강자들과 일본의 Toshiba, Hitachi, National, Sanyo, Sony, Sharp, Epson 등의 기업들 면면이 죄다 감히 한국의 제아무리 삼성이라고 해도 넘볼 수 없는 견고한 지위를 구축하고 있던 그런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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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시장에 후발주자로 남들 하는 것 베껴서 승부를 내고자 전력투구를 하겠다고 나선 호암의 결단에 찬성을 할 이성적인 임원들이 과연 몇이나 있었을까? 요즘 말로 이른바 레드오션 (Red Ocean) 도 그런 레드오션이 어디 있는가? 그래도 호암은 철저한 조사와 분석을 통해서 결단을 내렸고, 그의 경영철학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실행을 강행하였다. 그리고 막대한 적자 행진의 마지막 해인 1987 11월에 영면을 하게 된다. 그리고 삼성은 지난 24년간 그야말로 일취월장을 이룩하게 된다. 지난 달 CES에서 이건희 삼성전회장은 내외신 기자들 앞에서 이런 말을 하였다고 한다. 우리는 일본을 넘어섰다. 그들이 쉽게 따라오지 못할 것이다라고.

 

호암과 아주 비슷한 행보를 하고 있는 사람이 현해탄 건너 일본에  한 명이 있는 듯 하다. 바로 소프트뱅크의 손정의회장!

 

그가 지난 2006년 일본의 3위 이동통신사업자인 보다폰재팬을 자그마치 19조원의 돈을 주고 인수할 때 (그 중 80%가 넘는 인수자금을 차입으로 조달) 과연 어떤 마음이었을까? 누구나 인정하는 절대꼴찌인 보다폰재팬이었고, 꼴찌이다 보니 네트워크에 투자를 점점 못하게 되어 통신의 품질은 꼴찌에 걸맞게 나빴고, 브랜드 가치도 저렴하기 그지 없었고, 더군다나 2위인 KDDI의 약진으로 인하여 모든 사람들이 일본이동통신시장은 이미 고도로 포화상태가 되어 버렸다고 믿었던 그 즈음에손정의회장이 보다폰인수를 발표한 날 전직원들에게 한 말은 다음과 같다. 내가 꼴지를 계속하고 싶어서 인수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언젠가는 1등을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2등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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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소프트뱅크모바일(인수 후에 사명을 변경)은 여전히 꼴찌이다. 하지만 사뭇 지위가 다른 꼴찌를 하고 있다. 아직도 이용자 숫자에 기반한 시장점유율은 꼴찌이지만 성장률, 번호이동성과, 통화품질, 데이터 사용률을 비롯하여 각종 재무지표가 1등의 지위에 올라가 있다. 많은 임원들이 5년 전 보다폰재팬을 인수할 당시 회의적이었고, 시장전문가들과 주식시장에서의 애널리스트들은 심각하게 소프트뱅크의 몰락을 예견했었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이다.

 

병철회장과 손정의회장의 공통점은 결국 무엇일까? 긴 질문에 짧게 답을 해 보면 아마도 勇氣 아닐까?

2010/02/23 13:50 2010/02/23 13:50

http://twitter.com/masason 손정의회장의 트위터 주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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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지난 해 12 24일부터 느닷없이 트위팅을 시작한 이후 오늘 이 시간까지 총 88,027명의 Followers가 그의 글을 읽고 있다. 시작을 하자마자 소프트뱅크의 전직원들에게 트위터를 하라고 권유 (많은 사람들을 그것을 명령이라고 하지만)하였고, 그러다 보니 일반적인 네트워크를 보유한 사람들과는 다르게 시작을 하자마자 2만 명이 넘는 Follower가 생겨나게 되었다. 그리고 한 달여가 지난 지금은 네트워크 효과를 통해서 앞서 언급한 숫자만큼의 Followers가 생기게 된 것이다. 연예인도 아니고 정치인도 아니고 경영자로서 그 정도의 속도로 많은 사람이 following을 하는 것은 아마도 Bill Gates 다음이 아닐까 한다. 그렇지만 여러분도 혹시 두 사람들 동시에 Following을 해 보시면 알겠지만 Bill은 왠지 전문적인 Editor가 대행을 해 주는 듯한 느낌을 주는 반면 손정의회장은 손수 주로 아이폰을 이용해서 하고 있는 점이 조금 다른 점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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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손정의회장이 트위터를 시작하자마자 제일 처음 댓글로 받은 질문이 바로 당신 손정의 맞아? 였다고 한다. 실명으로 본인이 직접 시작한다고 첫글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도무지 믿지를 않았던 것일까? 일본 사람들도 겉으로는 점잖은 척 하지만 실제로는 무한정 의심이 많아서 일까? 아무튼, 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실명은 맞지만 대필을 하는 것이 분명하다고 댓글을 달아오자 손정의회장이 남긴 대답이 걸작이다.

 

私が本物かというコメントが山有りましたが、本物ですよ。代筆なんかもんでいません。こんなにしい事を人まかせにするわけにはいかないし、皆さんにも失になりますからね。だから、誤字とかあるかもしれないけど赦して下さいね。 1:05 AM Dec 26th, 2009 from Twittelator

대충 번역을 해 보자면, 제가 진짜일까 하고 말하는 코멘트가 많이 있었습니다만, 진짜입니다. 대필도 부탁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렇게 즐거운 일을 위탁으로 할 수는 없는 것이며, 여러분에게도 실례가 되니까요. 그러니까, 오자 같은 것이 있을 지도 모르니까 용서해 주세요.라는 말이 될 것이다.

 

이렇게 즐거운 일을 남이 대신하게 할 수는 없다!는 그 말이 핵심이 아닌가 한다. 그렇다. 대부분의 유명인들이 어느 수준 정도의 의무감 혹은 공명심 등으로 어찌 보면 조금 부자연스럽게 블로그, 마이크로블로그, 혹은 SNS 등을 하고 있는 반면에 손정의회장은 스스로 즐기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그가 던지는 주제는 그 영역의 너비와 폭이 남다르다. 때로는 30년 앞의 미래에 대한 기술, 교육, 사회시스템 등등의 질문을 던지고, 때로는 출장 갔다가 피곤해서 목욕을 하고 싶다는 말도 하고, 또 드라마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는 얘기를 하다가도 정치인들이 마이크로블로그를 해야 한다고 주장을 하기도 하고, 일본정부의 낙하산인사를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하고, 창의력을 저해시키는 주입식교육을 비판하기도 한다. 그야말로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한다고 보면 맞을 것이다.

 

지난 주엔가 트위터에서 손정의회장을 따라 다니기 시작한 지인 하나가 이런 질문을 했었다. 손회장이 이런 저런 깊이가 있는 얘기를 평소에 직원들과도 하는 것인가요? 아니면 트위터를 통해 멋있게 말을 하려고 생각해 내고, 자기편집의 과정을 거쳐서 얘기하는 것인가요?라고. 가까운 거리에서 10년이 넘게 손정의회장을 보아 온 사람으로서 감히 답을 드리자면 소소한 일상에 대한 글을 제외하고는 트위터에 올라 가 있는 대부분의 글은 그가 지난 십 수년간 부단하게 고민하고 생각하고 해답을 찾으려고 노력 해 온 주제들이다. 경영전략, 기술전략, 미래전략, 후계시스템, 교육, 정치, 문화, 역사, 철학 등등의 초광폭의 주제들을 일상적으로 고민을 하며, 때로는 함께 자리를 하는 사람들의 견해와 비판을 듣는 일을 너무도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러던 그가 트위터라는 21세기형 봉화를 만나서 차분하게 재잘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가 평소에 신념처럼 믿어 왔던 집단지성과 네트워크의 힘을 실천적인 참여를 통해서 구현해 나가는 중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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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회사 내부에서는 손정의회장의 초광폭의 재잘거림을 걱정의 눈빛으로 지켜 보는 사람들이 있다. Compliance를 책임지고 있는 회계부장과 법무부장 등은 공개기업인 소프트뱅크주식회사의 대표이사인 손정의회장이 혹시라도 회사의 기밀을 혹은 언급하지 말아야 할 미래전략 등을 트위터를 통해서 얘기해 버릴까 봐서 잠을 못 이룬다는 후문이다. 다행인 것은 손정의회장은 언론의 속성을 알고, 기업의 사회적인 책임을 알고, 무엇보다도 본인의 위치를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걱정은 조금은 기우인 듯 하다.

 

머 이 정도의 설명이면 masason@twitter손정의회장 본인이라는 정황으로는 충분하지 않을까 한다. 혹시라도 여러분들이 twitter를 하신다면 그 양반을 following 하면서 좋은 아이디어 남겨 보시기 바란다. 일본어로 하시면 좋겠지만 아니더라도 영어, 중국어, 그리고 한국어도 다 번역을 통해서 보고 계신 듯

2010/01/28 11:43 2010/01/28 11:43

지난 포스팅에서 언급한 후행투자(Follow-on Investment)에 이어 이번에는 공동투자(Co-investment)라고 하는 주제에 대해서 간략히 살펴 보도록 하자. 이 개념은 투자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타 기관 (주로 다른 창업투자사)과 함께 어떤 기업에 투자를 하는 것이 될 것이고, 피투자사의 입장에서 본다면 여러 군데로부터 투자를 유치하여 주주의 숫자가 늘어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얼핏 보기에 투자사든 피투자사든 공동투자는 결코 좋으면 좋았지, 나쁜 의미로 다가오지는 않을 듯 해 보이지만 실상은 이 공동투자로 인하여 기업의 운명이 갈라 질 수도 있기에 주의를 기울여서 결정을 해야 할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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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투자 (Co-Investment)가 어떤 의미이고, 왜 상호에게 중요한지, 그리고 공동투자를 유치할 경우에 어떤 점을 유의하면 되는지에 대해서 간략히 살펴 보도록 하자.

 

1. 공동투자(Co-Investment)란 무엇인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말 그대로 함께 투자를 하는 행위를 공동투자라 한다. 조금 더 명확히 공동투자라는 개념을 설명하자면, 해당 Round에 함께 참여하는 투자를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 과거 증자에 참여한 창업투자사가 만약에 해당 증자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엄밀히 말하자면 공동투자는 아닌 셈이다. 공동투자를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크게 보면 2가지 이유로 압축된다.

첫째는, 투자의 규모가 한 창업투자사가 감당하기 힘든 경우이다. 이 경우는 대부분 특정 분야이기에 투자의 규모가 크거나 (예를 들어, 반도체, 네트워크장비, 바이오등), 혹은 Late Stage 투자이기에 규모가 큰 경우이다. 대부분 기업들이 성장 후기로 접어 들수록 기업의 가치가 불어나기 때문에 한 Round에 대한 투자의 규모가 커질 수 밖에 없다. 이렇듯 규모가 커지면 해당 창업투자사들의 조합의 운용여력에 따라 몇 몇 창업투자사가 함께 Round에 참여를 하게 되는 것이다.

둘째는, 투자수익에 대한 확신도 있는 반면에 역설적으로 리스크도 커 보이는 경우에 그러한 리스크를 다소 분담하는 차원에서도 공동투자를 한다. 참고로 소프트뱅크의 경우는 투자의사 결정에 있어서 차별을 두고 있다. , 단독투자인 경우에는 투자심의위원의 만장일치로 투자의사결정을 하는 반면, 공동투자의 경우에는 3분의 2이상의 가결로 결정이 된다. 이는 공동투자라 하더라도 본질적인 리스크가 없어지지는 않겠으나 다른 시각의 개입을 통한 투자참여를 통해서 단독투자 보다는 리스크를 회피할 기회를 보다 더 많이 가지게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만장일치와 3분의2는 경험에서 보건대 엄청난 결과의 차이를 가져다 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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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공동투자는 왜 투자사와 피투자사 모두에게 중요한가?

공동투자는 오직 창업투자사들에게만 중요하다고 판단한다면 다소 직설적으로 말해 그것은 큰 오산이다. 창업투자사들끼리도 이른바 '궁합'이 있는데 이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이곳 저곳에서 투자를 해 준다고 덥석 다 받은 경우에 낭패를 보는 벤처기업들이 실제로 허다하기 때문이다. 그 궁합의 요소는 과연 무엇일까?

우선 스타일의 차이가 있다. 어떤 창업투자사는 이른바 Hands-on support를 적극적으로 하는 곳이 있는 반면에 또 어떤 곳은 투자 후 지원에 대해서 그다지 많이 신경을 쓰지 않는 창업투자사들도 다수 존재한다. 또, 투자수익에 대한 욕구만 가득 찬 창업투자사들도 있고, 반면에 기업가정신을 존중하고 동반자정신을 강조하는 창업투자사들도 있다. 만약에 전혀 스타일이 다른 창업투자사가 주주가 되어서 회사의 전략과 방향에 대해 각자가 다른 관점에서 얘기를 해 댄다면 해당 기업의 경영자들은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하는지 늘 고민을 하게 되는 것이다.

다음은 아주 현실적인 과제인데 요즘 점점 더 중요하게 부각이 되고 있는 사안이다. , 창업투자사는 대부분 현재 운용을 하고 있는 조합의 자금을 가지고 투자를 하게 되는데 그 조합의 운용기간이 공동투자에 있어서 무척 중요한 사안이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투자 유치 당시에 공동투자를 한 A창업투자사의 X조합은 잔여 운용기간이 3년이고, B창업투자사의 Y조합은 5년이 남았으며, 피투자사는 투자 유치 후 4년이나 5년이 지나야 상장을 보낼 수 있다고 가정을 해 보자. 보나 마나 A창업투자사는 투자 후 2년이 지나면 무리를 해서라도 상장을 보내라고 이런 저런 압력을 가해 올 것이다. 반면 B창업투자사는 조금 더 기다려 줄 수 있으니 회사의 성장에 힘써 달라고 요청을 할 것이다. 경영자들은 그 사이에서 Nutcracker가 되어 버리는 셈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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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창업자들의 입장에서 어떻게 대응을 하는 것이 좋은가?

한국만 하더라도 많은 창업투자사들이 있지만 (현재 등록된 창투사만 해도 100개가 넘는다) 공동투자의 기회가 왔을 때 서로 선호하는 창업투자사들은 제각각이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궁합이 맞는 창업투자사를 적시에 찾을 수 있는 확률도 그리 높지도 않다. 그렇다면 창업자들은 어떻게 대응을 하는 것이 좋을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스타일이 유사하거나 혹은 상호 보완적인 창업투자사를 찾아야 할 것이며, 다음으로는 조합의 만기가 유사한 시기인 창업투사자의 조합을 통해서 투자를 받으면 좋겠다. 문제는 과연 그것을 어떻게 아느냐이다. 즉답을 구하기 전에 벤처자금의 유치와 관련하여 아주 자주 발생하는 한가지 모습을 떠올려보자.

 

'창업자는 일정 시기가 지나서 보유한 자금이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하면 초조해 지게 마련이다. 따라서 이런 저런 인맥을 총동원하여 확신과 신념이 가득 담겨 있는 사업계획서를 뿌려대기 시작한다. 미팅도 한 두 개씩 잡히고, 만나 보고 나면 왠지 자신감이 더 충만해 진다. 그래서 이왕에 이렇게 준비한 거 다른 창업투자사도 또 만나게 된다. 사업분야가 성장성이 있고, 경영진들이 어느 정도 수준이 되는 기업이면 이곳 저곳에서 만나자고 연락이 오고 결국 여러 창업투자사로부터 대규모의 자금을 유치하게 된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이른바 공동투자의 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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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어떻게 이런 불편한 상황을 피해 갈 것인가? 답은 아주 간단하다. 규모가 큰 자금을 유치해야 하거나 혹은 리스크가 많은 도전이라고 판단이 된다면 투자의 유치 초기 단계에 이른바 Lead Investor를 잘 찾아서 설득하여, 그 해당 창업투자사가 적극 나서서 공동투자자를 초대하게 하는 방법이 가장 깔끔하다. 미국에서는 창업투자사들 중에 Lead를 하는 곳이 있고, 하지 않는 곳도 있다. 그래서 미국의 창업자들이 창업투자사를 만나면 반드시 물어 보는 질문이 있다. Do you lead a deal or not? 이라는 질문이다. 따라서, 미국에서는 공동투자의 경우에 반드시 Lead를 하는 한 개의 창업투자사를 서로 합의하에 결정을 하고서 투자유치를 진행하여 공동투자자를 찾게 된다. 아직 한국에서는 그런 개념이 제대로 정착이 되지 않은 관계로 투자유치단계에서 창업자들이 의외로 많은 에너지를 낭비하기도 한다. 색깔이 다른 창업투자사들에게 각각 대응을 하는 것 보다는 창구를 간결하게 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자.

2009/12/22 14:58 2009/12/22 14:58

필자는 벤처캐피탈에 입사하기 전 벤처기업에서 일을 했었다. 지금과는 반대 자리에서, 투자를 받으러 벤처투자자와 미팅을 한 적도 많았고 당시 벤처투자자들의 판단 기준은 무엇일까 하고 궁금해 했었다.

벤처캐피탈에 입사한 후 벤처투자자의 입장을 이해해 가면서
'아, 예전에 이런 것들을 알았더라면 투자자들 더 잘 꼬실 수(?) 있었을텐데...^^'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벤처캐피탈에 입사하고 세 달쯤 되었을 때 이러한 생각으로 적어둔 메모를 블로그에 올려 본다.
일반화하기에는 다소 무리인 부분도 있지만, 그래도 내부의 관점을 이해하는데는 어느정도 도움이 되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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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를 원하는 벤처기업인이 가끔씩 간과하곤 하는, 벤처투자자의 기본 잣대는 다음과 같다.


'
펀드 만기가 되기 전에 성공적인 exit을 통해 의미있는 규모의 수익을 거둘 수 있는 사업인가?'

이 질문에 대해 yes라고 답할 수 없으면 뛰어난 기술, 시장의 성장성, 경영진의 우수함 등은 모두 의미를 잃게 된다.

1.
벤처투자자의 입장 하나 - '펀드 만기가 되기 전에'

벤처투자자는 보통 5(길면 7) 정도의 만기를 가진 펀드자금을 가지고 투자를 집행한다.

펀드가 결성된지 이미 1~2년이 지났다면 앞으로 펀드 만기까지는 3~4년의 시간밖에 남지 않은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매출이 발생하려면 아직도 한참 기다려야할 것 같은 사업 아이템'만' 가지고 투자를 요청해오면 일단 좀 부담스러워 진다.


참고로 과거 코스닥에 상장한 기업들을 살펴보면
창업한지 3년 내에 상장한 경우는 전무, 3~5년이 극소수, 5~10년이 과반수 이상, 10년 이상인 경우가 소수였다. 그리고 아쉽게도 창업/투자 후 상장까지 걸리는 시간은 계속 길어지고 있는 것이 현재의 추세이다.

2.
벤처투자자의 입장  - '성공적인 exit을 통해'

벤처투자자가 벤처기업에 돈을 투자하는 가장 근본적인 목적은 성공적인 exit을 통해 돈을 버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성공적인 exit은 기업공개(IPO) 또는 인수합병(M&A)을 통해 가능한데 한국의 경우 기업공개와 인수합병를 통한 성공적인 exit 비율은 약 9:1 정도라고 한다.


그럼 어느정도 되야 상장이 가능할까?


참고로 코스닥에 상장한 업체들의 평균적인 외형규모는 매출 350, 순익 40억원 정도이다.
결과적으로, M&A 가능성이 별로 없는데다가 4~5년 후 ending picture가 매출 50억에 순익 10억의 기업이라면 벤처투자자 입장에서는 매력적인 투자 대상으로 보기 어렵다.

상장이 회사의 길이 아니라면,
향후 M&A를 통한 exit의 기회가 존재하는지가 중요한데 사실상 '성공적인' M&A는 상장보다 더욱 난이도가 높다고 볼 수 있다. '2년 전에 우리 회사보다 기술적으로 떨어지는 회사가 수백억원에 인수되었다'는 것은 M&A의 기준점으로 삼아서는 곤란하다. 2년 전에, 인수 기업에게 있어서 매력적인 M&A 대상이었던 것이지 지금은 상황이 전혀 다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3. 벤처투자자의 입장  - '의미있는 규모의 수익'

우선 벤처투자 역시 투자의 하나이기 때문에 수익률로 평가 받게 된다. 하지만 수익률은 어느정도 규모가 뒷받침될 때 의미가 있다. 2억 투자해서 10억 버는 투자(수익률 500%)30억 투자해서 30(수익률 100%)을 버는 투자가 있다면 일반적인 벤처캐피탈리스트 입장에서는 후자를 선호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한 회사에 대해 투자를 집행하기까지는 (소프트뱅크 벤처스의 경우) 두 명 이상의 투자팀 멤버가 약 2달간 투자 검토를 진행하게 되며 다른 투자팀 멤버들도 투자 심사에 참여한다.
투자 이후에도 담당 투자팀 멤버들은 매달 회사의 이사회/ 경영간담회에 참석하고 많은 communication을 진행해야 한다.

이렇듯 기본적으로 투입되어야 하는 resource의 크기를 감안하면
투자 금액이 너무 작은 경우에는 투자 대상으로서의 매력도가 떨어지게 된다.


벤처투자자로부터 투자를 계획하고 있는 경우, 벤처투자자들의 입장과 관점을 고려한다면 보다 효과적인 communication이 가능할 것이다.

2009/08/31 22:04 2009/08/31 22:04

앞선 글에서 손정의회장의 꿈 중에 하나가 초등학교 교사가 되는 것이었다고 밝힌 바가 있다. 그 꿈은 그가 아주 오래 전에 접었다고 했지만, 사실 누구를 가르치는 일을 접은 것은 아닌 듯 하다. 그는 종종 자신이 현업에서 은퇴를 하게 되면 그 시기에 적어도 소프트뱅크의 포트폴리오가 5천여 개 정도가 될 것이며, 5천여 개의 포트폴리오 기업들의 고위임원들 (예를 들면, CEO, CTO, CFO 등등)을 위한 교육 과정을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이름하여 SOFTBANK Academia! 이 프로그램의 주된 내용은 소프트뱅크와 손정의 회장 자신의 Gene DNA를 공유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것으로 구성할 계획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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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의회장이 제기하는 교육의 문제에 있어서 더욱 더 본질적인 것은 위의 소프트뱅크 아카데미아와 같은, 말하자면 재교육을 통한 경영자의 양성에 국한해 있지 않다. 손정의회장이 종종 사람들에게 던지는 질문 중에 아주 흥미로운 질문이 있다. ‘왜 천재적인 예술가들이나 운동선수들은 그 가능성을 아주 어린 시기에 발견하고, 또 그들의 재능에 걸맞는 교육을 대체로 4-5세가 되면 시작함에도 불구하고 (물론 대기만성형 예술가들도 적지 않은 것도 현실이긴 하지만) 기업가들은 그런 재능을 발굴하는 시스템이나 교육과정이 없을까?’라는 질문을 사람들에게 하곤 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손회장이 언급한 그 현실에 대해서는 공감을 바로 하지만 답변을 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모차르트, 슈베르트, 미켈란젤로, 피카소, 베토벤, 타이거 우즈, 펠레, 김연아까지수 없이 많은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사람들은 아주 어린 시기에 그들의 재능을 알아 본 주위의 사람들 (그것이 부모이든 아니면 전문가이든)에 의해 그들이 가진 가능성이 발견되고, 또 혹독한 훈련과 교육의 과정을 거쳐서 마침내 최고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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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천재적인 기업가들은 어린 시기에 발굴도 되지 않을뿐더러, 설사 그 싹수를 일찍부터 보여 준다 하더라도 제대로 된 교육과 훈련의 과정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제리 양, 래리 페이지, 마이클 델, 스티븐 리처드슨, 마츠시타 코노스케, 이병철, 그리고 손정의 등등수 많은 천재적인 기업가들은 그들 스스로의 극단적인 인내와 지혜와 용기를 통해서 기업을 일구고 또 꾸려 나온 것이다. 다만 예외가 있다면 세계적인 명성을 날리고 있는 기업가문들의 경우는 어릴 적부터 후계자 양성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기는 하다. 이태리의 메디치家, 유럽의 명문가인 로쓰차이드家, 스웨덴의 명문가인 블렌베리家 등 가족이 중심이 되어 승계되는 기업들의 경우는 어릴 적부터 각 가문 특유의 교육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극히 제한적인 가족 중심의 프로그램인 것이다.

 

세계 최고의 대학과 MBA를 나오거나 박사학위를 가진 사람들 중에서 훌륭한 경영자가 있는가? 물론 경영자는 있다. 그러나 기업가는 별로 없다 (여러분들은 적어도 경영자와 기업가의 차이 정도는 알고 있다고 믿는다). 다시 말하자면, 특출한 예술가와 운동선수들의 경우처럼 기업가도 아주 어릴 적부터 제대로 된 교육과 훈련이 필요한 것이다. 경영학을 잘 배우고 학점이 높다고 해서 훌륭한 기업가가 될 수는 없다. 만약에 그렇다면 한국의 기업은 서울대 경영학과 출신이 모두 재벌총수를 하거나 대표벤처기업의 창업자가 되어 있어야 하며, 미국은 하버드나 스탠포드, 펜실베니아 대학 MBA 출신들이 죄다 위에서 언급한 미국의 경영천재들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훌륭한 경영기술자와 기업가는 확연히 다른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어린 아이들에게서 기업가적인 기질을 지닌 것을 조기에 발견한다 하더라도 과연 어떤 것들을 가르치면 천재적인 기업가로 성장하게 될 것인가? 물론 쉽지 않은 일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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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어린 경영천재들에게 재무나 회계, 마케팅 등등의 경영학의 기본이 되는 경영기술적인 지식을 주입한다고 해서 천재로 성장해 가지는 않을 것임은 자명하다. 앞서 언급한 기업가들이 발휘하는 역량은 단편적인 경영 지식에 제한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약 경영천재를 양성해야 한다면 경영기술 보다는 리더십, 위기관리, 협상의 원리, 통찰력, 기업의 사회적인 책임, 인간이 중심이 되는 경영 등등 사뭇 비경영학적이며, 다소 철학적인 주제들과 씨름하게 하는 프로그램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만약에 프로그램이 잘 준비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적어도 한국에서 그것은 우리 모두의 숙제인 듯 하다. 대한민국이 당면한 모든 범주의 문제들을 궁극적으로 파고 들면 결론은 하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종종 얘기한다. 그 결론은 바로 교육의 문제이다. 단지 사교육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 전반의 문제이다. 얄팍한 생각을 가지고 늘 방황하는 필자도 손정의회장이 언급한 경영천재조기양성론을 듣자 마자 한 생각은 강남에 번듯하게 ‘Kids MBA 학원을 차려서 사업을 해 볼까 하는 것이었다. 결코 이렇게 어떤 개인적인 노력을 통해서 해결이 될 문제는 아닌 듯 하다. 누가 지혜로운 해결책을 내 놓지 않을까 하는 희망으로 답답한 가슴을 좀 진정시켜 보기도 하지만출처 심상정, 핀란드 교육에서 희망을 찾다 - 오마이뉴스

2009/08/31 15:19 2009/08/31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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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의회장이 지면에서나 혹은 인터뷰를 통해서 밝혀 온 본인이 어릴 적부터 하고 싶었던 일은 무려 다섯가지나 된다. 남들은 한가지의 꿈도 제대로 꾸어 보기 어려운데 자그마치 다섯 가지씩이나 되는 꿈을 지니고서 성장을 해 온 손정의! 오늘은 그 다섯 가지의 꿈을 탐색해 보자.

 

우선 그의 다섯 가지의 꿈을 차례대로 나열을 해 보면, 사업가, 정치가, 화가, 초등학교교사, 그리고 시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린 시절 가질 수 있는 장래 희망과 사실 크게 다를 바가 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21세기를 관통하는 최고의 기업가로 그 꿈을 거의 이룬 듯한 그가 지닌 나머지 네 가지의 꿈은 어찌 보면 다소 생뚱맞은 구석이 없지 않아 있다.

 

사업가로서의 꿈은 그의 부친으로부터 물려 받은 영향이 컸고, 어려서부터 다양한 경험을 통해 이미 그 자질을 드러내었었다. 그가 12세가 되던 해에 아버지가 느닷없이 커피사업을 하겠다면 자그마한 카페를 열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어린 손정의의 눈으로 봐도 그 카페가 위치한 장소는 도저히 손님을 올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한적한 곳이었다. 전철역으로부터도 멀고, 번화가도 아닌 그런 장소였던 것이다. 그렇다 보니 커피 원료를 공급할 유통회사도 그 가게에 커피를 공급하는 것 조차 꺼려하여 도무지 장사를 시작할 수 조차 없었다. 그래서 소년 손정의는 공짜 쿠폰을 대량 인쇄하여 역전에서 뿌리자는 아이디어를 아버지에게 내었다. 당연히 아버지는 말도 안 되는 소리 말라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소년 손정의의 고집 또한 만만치 않아 결국 천 여장의 공짜 쿠폰을 배포하게 된다. 결국 커피공급업자를 초대를 한 날 그 카페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커피공급업자는 당연히 아주 저렴한 가격과 좋은 결재 조건으로 커피를 공급하게 되었다. 물론 초기 비용은 많이 들어 간 것이지만 결국 얼마 가지 않아서 투자금을 다 회복을 했고, 몇 년 지나서 아주 비싼 가격으로 그 카페를 매각했다는 일화이다. 손정의회장이 Yahoo! Broadband의 사업 초창기에 공짜로 Set-top Box를 뿌리면서 가입자를 선점한 전략을 아마도 이 때 배운 모양이다.

 

정치가가 되겠다는 꿈은 어쩌면 재일교포 3세로서 핍박 받으며 성장을 해 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꾸어 볼 만한 것으로 보인다. 손정의회장은 단지 이방인으로서의 성장 과정에서 겪은 고통 때문이 아니라 일본의 권위적이고 보수적인 사회 정치적인 환경에 대한 환멸을 지니고 있는 수준이다. 일본국회를 방문했을 때 의원들만 다닐 수 있는 레드카펫이 깔린 통로를 통해 들어 가려다 경비원의 제지를 받았던 경험을 얘기할 때면 그 눈빛이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그의 생각은 국회는 국민을 위한 것이며, 당연히 국민의 권리로서 국회를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손정의회장은 일본에서 정치인이 되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는 세계인류의 평화와 공동의 번영을 위한 그 무엇인가를 할 수 있고, 해야 할 때가 오면 반드시 정치적인 결단을 내리고 행동에 옮길 것이라고 한다.

 

사업가와 정치가는 설명이 좀 쉬운 듯 하지만 나머지 세 가지의 꿈은 어릴 적 생각이었기에 설명이 그리 쉽지 않다. 특히 초등학교교사의 꿈은 초등학교 때 담임교사였던 미카미 다카시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 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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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 그 꿈을 밝히자 마자 아버지는 재일교포로서의 지위를 가지고는 심지어 교육공무원 조차 못한다는 설명을 듣고 그렇다면 귀화를 시켜 달라고 요구한다. 이에 아버지는 손정의에게 초등학교 교사도 훌륭한 직업이지만 그것 보다는 더 크게 될 수 있으니 다른 쪽으로 소질을 키워 나가라고 달래게 된다. 그날 이후 며칠간 아버지와 대화를 단절한 채 차별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날 이후 그 꿈은 접었지만 그래도 왜 그런 꿈을 꾸게 되었냐고 물어 보면 답은 좀 의외다. 자신의 경험을 가지고 보니까 그 어떤 시기보다도 초등학교 때가 가장 중요하며, 그 때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꿈과 희망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해 주고 싶다고 한다. 국영수 학원을 전전하는 우리 아이들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이지 않은가?

 

손정의회장은 가끔씩 화이트보드에 그림을 그리는데 그 실력이 남다르다. 물론 대부분 회의를 하면서 다이어그램과 개념도를 그리지만 가끔씩 만화 (특히 스누피라든가 톰과 제리, 그리고 다양한 디즈니 캐릭터들을 자유자재로 그린다)를 그리기도 한다. 어릴 적 꿈 중에 하나가 화가였다고는 하지만 아마도 화가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꿈은 시인이었다. 손정의회장이 사람들과 대화를 하는 모습을 보면 적절한 어휘의 선택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느낌을 가질 때가 많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양한 지식을 근간으로 하는 비유와 은유에 있어서는 탁월한 자질이 있어서 좌중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시라는 것이 기본적으로는 운율과 비유의 문학인지라 그가 시인이 되겠다는 어릴 적 꿈이 있었다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가 않다. 그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쓴 아래의 시를 보면 어린 손정의의 정의감 넘치는 마음과 시적 역량이 한껏 드러나 있다.

 

[눈물]

너는 눈물을 흘려 본 적이 있니?

당신은?

너는?

눈물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고 있니?

그것을 인간으로서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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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눈물을 흘리고 나면 창피하지.

하지만 모두 눈물을 흘리고 싶어 흘리는 건 아니야.

순백의 진주.

그것인 인간임을 증명하는 것.

그것은 너무나도 소중한 것.

너는 아직도 창피한거니?

괴로울 때.

슬플 때.

그리고 분통이 터질 때.

너의 눈물은 자연스레 솟아오르지.

그래도 넌 창피한 거니?

개중에는 정말 잔인한 눈물도 있단다.

그것은,

원자폭탄의 비극을 맞이한 눈물.

인종 차별에 대한 분노의 눈물.

손미 마을의 대학살.

세계 곳곳에서 사름들은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울음을 그치지 않겠지.

이런 비극을 호소하기 위해서라도 눈물은 결코 없어서는 안 되는 것.

그래도 넌 창피한 거니?

눈물이라 너무나도 소중한 것.

-         이노우에 아쓰오의 손정의전기에서 옮김-

 

다섯 가지의 꿈 중에서 이제 막 하나의 꿈을 완성해 가는 과정에 있는 손정의회장! 그의 말과 행동과 마음 속에는 이미 그 다섯 가지의 꿈을 다 이루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2009/07/22 17:37 2009/07/22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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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의회장은 재일교포3세로서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이다. 그런 배경으로 인하여 많은 한국의 언론인이나 경영자들이 손정의회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을 때 마다 반드시 물어 보는 공통적인 몇 가지 질문들이 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요약해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손정의회장은 한국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을 하는가?

손정의회장이 1999년 말에 한국에 방문을 하여 기자간담회를 할 때 어떤 기자가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손회장의 마음의 고향은 어디입니까?

단일민족, 단일핏줄, 단일문화에 대한 내적인 공감대가 대단한 관계로 한국사람들은 해외에 있는 교포들에게도 항상 회귀적 본능이 있을 거라고 믿는 편이다. 물론 대한민국이 단일민족이라는 것에는 논란의 소지가 있다고 본다. 역사를 되돌이켜 보면 북방으로부터 혹은 남방으로부터 수없이 잦은 타인종과 민족의 유입이 있어 왔으므로 대한민국이 결코 단일한 핏줄은 아니라고 보지만 그건 여전히 소수의견일 뿐이다.

아무튼 위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손정의회장은 이렇게 하였다.

제 마음의 고향은 인터넷입니다. 손정의회장다운 답이 아닐까 한다. 손정의회장은 비록 제일교포3세이며, 여러 전기에도 이미 나와 있듯이 그런 이유로 개명도 하지 않고 ()이라는 성과 이름을 그대로 쓰기 위해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본인 스스로 밝힌 바에 의하면 그렇게 고집을 부려서 이름을 고수한 이유는 한국이 본인의 조국이라는 생각보다는 한 인간으로서의 자존(自尊)의 문제였다고 한다. 20살이 넘도록 그 이름으로 살아 왔는데 왜 단지 자신의 신체가 소속되어 있는 국가인 일본정부는 나에게 이름을 바꾸라 하는가에 대한 적극적인 저항의 결과였던 것이다. , 손정의회장에게 애국심, 국가에 대한 존경 등을 묻는 것 자체가 타당하지 않아 보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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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태어났는지, 어디서 교육을 받았는지, 어디에서 사는지, 그리고 죽어서 어디에 묻힐 것인지가 별로 중요하지 않는 전형적인 유목민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한국을 싫어한다거나 외면한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다만 손정의회장에게 있어서 한국은 할아버지의 고향이고, 본인의 뿌리일 뿐이다. 그리고 성장한 이후 지금까지 한국에 대한 생각은 적어도 IT나 기업가정신에 있어서는 참으로 배울 것이 많은 또 하나의 나라일 뿐이다.

 

2. 손정의회장은 한국말을 하는가?

대체로 살고 있는 나라가 어떤 나라이든 간에 교포 3세 정도가 되면 모국어를 유창하게 하기는 쉽지가 않다. 미국이든 일본이든 중남미든지 간에 3세까지 내려오면 거의 100년 가량을 그 나라에 뿌리내리고 사는 것이므로 거의 그 나라 사람이 되는 것이다. 물론 가끔씩 집안분위기나 개인의 노력 등으로 인하여 다소 어눌하지만 한국어를 구사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교포3세까지 내려가면 그것도 참으로 보기 드물다.

물론 손정의회장도 예외는 아니라서 한국말을 거의 못한다. 몇 가지 생활용어는 구사를 하는데 발음이 솔직히 좀 어색하다. 하지만 손정의회장의 언어 역량은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영어의 경우를 보더라도 참 쉽게, 그리고 정확하게 자기 의사 표현을 한다. 그리고 상당히 수준이 높은 유머감각도 지니고 있다. 대화를 할 때 일단 좌중을 압도하는 기세를 지니고 있는 와중에 한방씩 터져 나오는 유머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경직된 방어적 태도를 무장해제하는 효력을 지니게 되는데 그 역량은 실로 탁월하다. 남들이 웃어 줄 때 그걸 쳐다 보면서 짓는 미소가 상당히 매력적인 사람이다.

 

3. 손정의회장은 한국 음식은 좋아하는가?

손정의회장은 특정 음식을 편식을 하는 성향은 전혀 없다. 어떤 자리에서든 특정한 음식을 고집하지는 않지만 다만 상대적으로 선호하는 음식은 생선류이다.

일본 음식이 가지는 고유한 특징인 조금 밋밋한 맛에 비하자면 대체로 한국음식의 맛은 강한 편이다. 하지만 그렇게 맛이 좀 강한 여러 종류의 한국 음식도 골고루 좋아하는 편이다. 최근에는 떡볶이도 좋아하게 되었다 하고, 심지어는 부대찌개의 그 진한 맛을 사랑하게 되었다고도 한다 (부대찌개가 한국음식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부대찌개의 어원이 무엇인지도 정확하게 알고 있어서 다소 놀랍기도 했다.

아무래도 생선은 일본식 스시나 사시미를 좋아하지만 가끔은 한국식 생선구이도 입맛에 맞아 하며, 고기는 양념이 베어 있는 갈비나 불고기 보다는 생등심류를 좋아하는 편이다. 출장을 같이 다녀 보면 각나라의 음식 문화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편이라 대부분 주저하지 않고 그 나라의 특징적인 음식에 대한 도전을 하는 것을 보면 역시 음식 기호만 보더라도 영락없는 유목민적인 기질이 있다고 하겠다.

 

4. 주량은 어떤가? 노래는 잘 하시는가?

지금까지 여러 나라를 출장을 다니며 현지 사람을 수없이 만나오면서 그 어떤 나라의 사람도 주량에 대해서 직설적으로 물어보는 것을 경험해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상대방의 주량에 대해서 참 많이들 궁금해 한다. 대결을 하기 전에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을 위한 사전 탐색을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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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많은 한국사람들이 손정의회장은 술을 잘 하냐고 묻곤 한다. 잘 하고 못 하고의 기준은 참으로 주관적인 것이므로 답하기 곤란하기는 하지만 술을 마시긴 마신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듯이 손정의회장은 20세 중반에 사업을 시작하자마자 간경화로 인하여 거의 3년 가까운 기간을 병원신세를 졌었다. 그래서 그 이후로 의사가 절대금주를 권했고 거의 20여년 간은 정말로 술을 입에도 대지 않았었다. 다만 4-5년 전부터 의사의 허락이 있은 이후에 와인을 조금씩 마시기 시작했다. 물론 2-3잔 정도의 와인을 마신다. 짐작하다시피 그것도 아주 좋은 와인들만 마신다. ! 다른 술은 정말로 어려운 자리에 갔을 때 이미 준비된 특별한 술 이외에 다른 대안이 없을 때 딱 한 잔만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분위기가 괜찮고, 다들 한곡조씩 뽑는 상황이 되면 손정의회장도 가끔은 노래를 부른다. 한국을 치자면 트롯트라 할 수 있는 일본 엥까를 좋아하며, 노래를 한다기 보다는 시 한 수를 읊조리는 느낌으로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어 낸다. 음색은 아주 좋은 편이나 고음처리는 좀 미숙하다고 평가를 내릴 수 있다.

 

이 정도면 손정의회장을 만나실 기회가 있는 한국분들은 좀 더 독창적이고 도전적인 질문을 던지시는데 시간을 할애하셔도 될 것 같다.

2009/06/26 19:06 2009/06/26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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