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실리콘밸리에 대한 포스팅을 통해 (한국벤처가 실리콘밸리에서 태어났다면…) 한국의 벤처기업가들이 지닌 환경적 제약에 대한 아쉬움을 표한 바 있다. 여전히 그 아쉬움은 유효하며, 상상의 욕구는 또한 안타까움으로 존재한다. 하지만, 오늘은 다소 역설적이긴 하지만 실리콘밸리에 대한 맹목적이고 무조건적인 추앙과 숭배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를 내어 보고자 한다.
지난 이십 여 년간 한국의 IT산업생태계에 얽혀 있는 많은 사람들은 틈만 나면 실리콘밸리 발(發) 뉴스에 귀를 기울이고, 감탄하고, 흥분해 왔으며, 그 현상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1990년 전후로 반도체와 컴퓨터가 주된 뉴스의 소재였을 때 싹이 돋아 났던 애정은 1997년 이후 인터넷 버블 때는 거의 광란의 사랑을 하는 듯 하더니, 버블이 정리되고 새로운 질적 성장을 이루고 있는 웹 2.0을 중심으로 한 실리콘밸리의 역동성에 대한 몽환적 짝사랑은 여전히 멈출 기색이 보이지 않는 듯 하다. 인텔, 썬마이크로, 실리콘그래픽스, 시스코, 어도비 등 90년대 초반 기업들로 시작되어, 네츠케이프, 라이코스, 야후, 지오시티즈 등의 닷컴버블의 주역들에게 관심을 쏟아 붓더니만 이제는 감히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한 채 멀리서 흠모하고 있는 구글을 비롯하여, 최근 들어 이름 조차도 생소한 수 없이 많은 Social Something Company들을 향한 사랑의 주문을 매일같이 외우며 애정 공세를 퍼붓고 있다.
한쪽으로 치우친 사랑의 힘이 너무 커서일까? 변심한 애인을 대하듯 한국의 벤처생태계에 대해서는 냉소적인 무관심 혹은 비관적인 비난을 툭툭 내 던진다. ‘한국 인터넷은 <포털>의 제왕적 독점으로 인해 아무 일도 안 된다’는 말들만 무성하다. 뭐,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꼭 맞는 말도 아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추앙하고 있는 미국도 (아니 실리콘밸리도) 사실 여전히 야후와 같은 포털이 위력을 지니고 있고, 전자상거래 시장은 이베이가 다 먹어 버렸고, 검색이라는 말은 완전히 구글과 동의어가 되어 가는 상황이고, 네트워킹서비스는 페이스북에 의해 점령이 끝난 상태로 분야별 과점적 현상이 심하기 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왜 여전히 도전하는 자들이 있는 것인지를 반문해 보면 ‘꼭 맞는 말도 아닌’ 것 같다. 혹은 반대로, 앞서 말한 거대인터넷기업들이 소규모 스타트업들과 상생하거나 혹은 좋은 매수자가 되는 관계에 있기 때문에 굳이 ‘틀린 말은 아닐’ 수 있기도 하다.
한국에서 IT산업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은 실리콘밸리에서 사업을 하면, 특히 인터넷이나 웹과 관련된 사업을 하면 무조건 성공을 할 수 있고, 그 성공의 끝자락에는 구글이든 아마존이든 이베이든 심지어는 다 망한 줄로 아는 야후까지 나서서 회사를 좋은 가격을 주고 사 줄 것이라고 믿고 있는 듯 하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왜냐면,
숫자를 통해서 검증을 해 보도록 하자. 미국의 NVCA (http://www.nvca.org/ 미국 벤처캐피털협회)에 등록된 창업투자회사가 최근 업데이트 된 바에 따르면 426개이다. 시장전문가들에 따르면 협회에 등록 안된 창업투자회사가 그 보다 2배 정도가 된다고 하니 적어도 미국에는 1천2백 개 정도의 창업투자회사가 있다. 그 중 경제위기와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투자를 하는 창업투자회사는 약 400개 정도가 된다고들 한다. 아주 보수적으로 봤을 때, 그 400개의 창업투자회사가 지난 10여 년간 투자한 기업은 회사당 평균 100개 정도 될 것이다. 시장 평균보다 많은 예를 들어 보면, Draper Fisher Jurvetson 같은 창업투자회사는 현재 포트폴리오 숫자가 260개나 된다. 그렇다면 지난 10년간 투자를 집행한 숫자는 적어도 그것의 3배가 될 터이니 700개가 넘는 기업에 투자를 한 셈이다. 분야를 집중해서 투자를 하는 것이 장점인 Mohr Davidow Ventures의 경우를 보자면, 지금 현재 포트폴리오가 56개 정도이고, 지난 10년간 120여 개의 기업에 투자를 하였다. 아무튼 이런 가정을 따라서 결론을 내려 보자면, 10년간 미국의 창업투자회사가 투자를 한 기업은 어림잡아 40,000개이다. 그 중에서 실리콘밸리를 거점으로 하는 기업이 60%가 넘는 수준이니
이럴진대, 실리콘밸리에서 성공하기가 쉬워 보이는가?
환경을 탓할 시간에 시장을 더 연구하고, 이미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는 선발주자들을 욕할 시간에 경쟁전략을 더 세밀히 가다듬고, 아무도 알아 주지 않는다고 한탄하며 소주잔 기울일 시간에 조금 더 면밀하게 마케팅전략을 고민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이미 과점적인 지위에 올라서 있기 때문에 많은 비평가들로부터 허구한 날 욕을 먹고 있는 네이버, 다음 등등의 포털과 다른 나라 기업에 팔아 넘기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한국 기업인 옥션과 지마켓, 그리고 절대적 세계지존인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인터넷게임기업들의 업력이 결코 길지 않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했으면 한다. 그리고 세상은 그다지 만만하지가 않아서 앞으로 5년 혹은 10년 후에는 어떤 기업이 그 지위를 대신하고 있을지 아무도 장담할 수가 없을 것이다. 불과 7-8년 전까지 야후가 지금의 이런 초라한 모습이 될 거라고 예측한 사람은 정말로 단 한 명도 없었듯이. 즉, 어디서 시작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는 것이, 그리고 무엇보다도 ‘무엇을 하기 위해서’를 알고 시작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이미 약 20개가 넘는 미국의 선도적인 창업투자회사들이 한국이나 일본이 아닌 중국에 지사나 지점, 혹은 현지 파트너들을 만들어서 투자를 적극적으로 해 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실리콘밸리 찬가를 부를 시간도, 여유도 없지 않을까? 그러니, 그게 계곡이든, 골목이든, 단지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21세기는 점점 노쇠해 가는 실리콘밸리가 아니라 구로디지털단지가, 대덕밸리가, 혹은 새롭게 등장하게 될 역동적인
대한민국의 열정적인 기업가들의 건투를 빈다! 세상의 중심에 설 그날이 올 때 까지!


아주 유익하게 읽었습니다. 모두들 파이팅~ ^^
2010/03/24 04:14네, 좋게 평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로 우리 모두 파이팅입니다! ^^
2010/03/24 13:20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역시 자신과의 fitness 인것 같아요.
2010/03/24 10:50네, Chester님은 그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시리라 믿어요. 그리고 좋은 fitness를 찾기 위해 또 함께 노력해 보자구요. ^^
2010/03/24 13:21노키아지멘스코리아의 원재준 사장님이 쓰신 글인데 이 글과 함께 읽어 볼만한 글이라 생각됩니다.
2010/03/24 11:51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있고, 무엇을 해야 할 지 생각하게 되는 글이더군요.
http://www.dt.co.kr/contents.htm?articl ··· 69673001
좋은 글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원사장님의 글 중에 한 VC가 차로 30분 거리 밖에 있는 기업에는 투자 안한다고 한 회사가 바로 KPCB입니다.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라 이사회 참여를 통한 적극적인 포트폴리오 관리와 지원이 중요하다고 보는데 너무 멀리 있으면 귀찮아지기 때문이라네요. 그래서 대부분의 실리콘밸리 소재 VC들은 록키산맥 동쪽 회사에는 거의 투자를 안한답니다. 한국은 뭐 좁아서 다 가능할 것 같기도 하고...ㅎㅎ
2010/03/24 13:25전적으로 동감합니다. 또한 가슴에 불을 지펴주는 글이네요.
2010/03/24 13:12'내탓이요'를 되새겨 봅니다.
좋은 글 매번 감사합니다.
어떤 특정한 개인들의 탓이라기 보다는 환경의 탓이 큰 것 같아요. 물론 그 환경을 만든 것이 바로 인간이기도 하지만...아무튼 파이팅 하자구요!
2010/03/24 13:26실리콘밸리를 막연히 동경하고 부러워하는 분위기가 여전합니다만 이젠 한국이 아닌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해 보겠다는 겁없는 시도들도 많아 진 것 같습니다. 포스코가 신일철을 이기고, 삼성이 소니를 이겼듯이 IT 소프트웨어나 서비스에서도 조만간 좋은 결과가 나올거라 봅니다. 그나저나 Bay Area의 따뜻한 풍광이 불현듯 그립네요~
2010/03/24 15:29네, 이제 정말로 대기업들은 각자가 알아서들 하는 듯 하니까 남아 있는 것은 중소벤처들이 겁나게 성장을 해서 보란듯이 세계일등의 반열에 떡 허니 자리잡고 앉아 있을 차례가 오고 있습니다. 뭐 이미 온라인게임기업들은 자타가 공인하는 성장을 한 듯 하지만, 아직도 글로벌일류기업이 되기에는 2% 정도 부족한 면도 없지 않아 있지요. 여전히 국제적인 산업분류가 장난감산업으로 분류되고 있는 한국의 인터넷기업의 분발을 기원합니다! 아, 그리고 실리콘밸리가 그립다면 저도 다른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즈음에 느낄 수 있는 따스한 풍광이에요. 몬테레이에서 나파까지 해안도로로 쭉 운전하며 내질러보면 스트레스가 좀 내려갈듯...언젠가는 해 볼랍니다. ^^
2010/03/24 15:50환경을 탓할 시간에 생각의 방향과 행동의 속도를 고민하는게 효율적인거 같습니다. 멋진 한국 벤처들 화이팅입니다~ 아자아자 고고씽~
2010/03/24 20:45김유대표님이시죠? 잘 지내시나요? 늘 마음속으로 응원을 보내고 있답니다. 반드시 멋진 성취 일구어 내시길 기원합니다. 아자아자 파이팅!
2010/03/25 11:25맞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실리콘벨리에 대한 예찬이 아닌 한국의 환경에서 발전하고 성장하는 것이겠죠. 우리나라의 역동적인 문화와 환경 속에 세계 최고의 IT기업이 자라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010/03/26 13:33다만 실리콘벨리로 부터 한국벤처 제도와 환경에 적용가능한 장점은 과감히 수용하는 노력도 필요할 것 같고요. 모든 것은 모방에서부터 시작하는 거니깐요. ^^
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실리콘밸리가 생긴 것은 계획되고 준비된 것이 아니겠으나 실리콘밸리를 넘어 서는 일은 잘 준비되고 계획이 되면 더 좋을 듯 합니다. 실리콘밸리의 적용 가능한 장점은 Hard한 것이라기 보다는 Soft한 것이 더 많은 듯 하기에 우리가 가야 할 길이 다소 멀고 험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길은 꼭 가야 할 길이 아닌가 싶네요. 우리 모두의 도전에 승리의 여신이 함께하길...
2010/04/01 13: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