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두 명의 남자가 눈물을 흘리며 우는 모습을 지켜 보았다. 하루를 사이에 두고 한 남자는 서럽게 통곡을 했고, 다른 한 남자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첫번째 남자의 울음은 아마도 이미 전국민이 함께 지켜 보았기 때문에 새삼스럽게 다시 얘기하기가 다소 저어하다. 하지만 그 남자의 울음이 아직도 짙은 잔상으로 남아 있기에 다시 떠올려 보고 싶다. 그 남자 ‘차두리’
8강의 문턱에서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는 마지막 순간까지, 남아있는 ‘배터리 잔량’을 추호도 생각하지 않은 채 차두리는 최선을 다해 뛰었다. 그리고 추가시간으로 주어진 3분마저도 끝나고 주심의 휘슬이 울리던 순간! 차두리는 그라운드에 누웠고, 누군가에 의해서 일으켜 세워졌고, 그 즈음에 시작된 울음은 급기야 거의 통곡으로 변했고, 지켜 보는 이들을 가슴 저미게 만들었다.
차두리선수는 늘 밝고 맑았다. 2006년 대표선수명단에 본인의 이름을 올리지 못했을 때도, 그의 국가대표선발은 그의 아버지에 대한 배려 때문이라는 얘기가 들릴 때도, 시중의 온갖 비아냥과 조롱과 개그소재가 되어 버린 상황에서도 그는 늘 명랑하고 낙천적인 모습이었다. 많은 신세대 선수들이 늘 얘기하듯이 월드컵본선을 ‘즐기는’ 마음에서 참여를 한 듯 훈련 때도 웃었고, 인터뷰 때도 웃었다. 그랬던 차두리가 통곡을 하였다. 비와 땀에 범벅이 된 유니폼 상의를 끌어 올려서 눈물을 훔쳐야 할 정도로.
그 장면을 보면서 미안함이 엄습해 왔다. ‘야 임마! 내가 차도 그 정도는 하겠다. 너는 왜 공은 안 보고 뛰기만 하냐? 도대체 위치선정이 그게 뭐냐?’라며 쏟았던 비난이 참으로 한심스럽고 민망스러워져 버렸다. 그의 울음이 16강에 멈춰선 대한민국의 축구에 대한 아쉬움을 다 가셔 주지는 못했지만, 그의 울음을 보면서 사람을 그냥 너무 내가 가지고 있는 단편적인 정보와 생각과 편견만을 가지고 대하면 절대로 안되겠구나 하는 깨달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차두리선수가 너무 고맙다.
또 다른 한 남자의 울음!
지난 25일 일본 동경에서는 있었던 소프트뱅크의 주주총회에서
2시간가량의 30년 계획 발표의 말미에
저는 무번지에서 태어났습니다.
나에게 있어서는 소중하고 소중한 분입니다. 14살에 일본에 건너왔고, 14살에 결혼했습니다. 상대는 37살인 저의 할아버지. 그녀는 나의 할머니입니다.(이 때 할머니 사진이 올라 온다)
도중에 전쟁도 체험했습니다. 살아있는 것도 겨우 일 만큼 더러운 물을 마시고, 굶주림으로부터 아이들을 지켜내오며 열심히 살아오셨습니다. 일본에서 한국국적으로, 말도 어눌하고, 아는 사람도 의지할 사람도 없이 14살에 건너왔습니다. 14살은 아직 애지요. 중학생입니다. 혼자서 낯선 나라에 왔다는 것 자체가 힘들었을 것 입니다. 그리고 저의 아버지와 어머니! 아버지는 중학생 때부터 가족을 경제적으로 책임지며, 열심히 일하신 분입니다.
매우 힘들고 힘든 생활 속에서도 소주를 만들었고 돼지를 길렀습니다. 어떻게든 살아왔습니다. 그런 중에 제가 태어났습니다. 1957년에…제가 태어났을 무렵에는 조금은 살아갈 정도가 되었지만 그래도 함석지붕의 너덜너덜한 부락의 집에 살고 있었습니다.
나의 호적은 사가현 *** 도로 無번지로 쓰여있습니다. 아무리 무번지라도 일부러 무번지라고 쓰지 않으면 좋을텐데…불법거주이기 때문에, 자기 땅이 아니라, 국철의 선로겨드랑이의 공터에 함석지붕에 판자를 붙여 살았기 때문에 정식으로 호적을 인정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무번지에서 태어났습니다.
난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만, 3,4세 무렵 할머니가 저를 매우 귀여워해주었습니다. 매일 산책에도 데리고 가주시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열심히, 정말 열심히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언제나 집에 없었습니다. 나를 돌봐준 것은, 할머니였습니다. 매일 할머니가, ‘마사요시야(한국어로 야) 산보가자’라고 하시면, 나는 기뻐서 할머니를 따라갔습니다
할머니가 산책 갈 때는 리어카를 타고 매달려 갔습니다. 별로 말하고 싶진 않지만…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거무스름한 리어카가 미끄러집니다. 그 리어카는 드럼통을 반으로 잘라, 3개4개 쌓아두고, 거기에 기르고 있는 돼지의 먹이, 잔반이 같이 올려져 있습니다.
역전근처의 식당에서 잔반을 받아다가, 그것을 모아서 돼지 먹이로 씁니다. 나는 어렸기 때문에, 리어카를 타는 것만으로 즐겁게 갈수 있었습니다. 단지 어딘지 모르게 미끌미끌하고, 썩은 냄새 같은 게 나면서, 비 온 뒤에 울퉁불퉁한 길에서 웅덩이에서 미끄러지면 떨어져 죽겠구나라고 생각하면서, ‘꽉 붙잡아라’라는 말을 들으며 매달려 있었습니다.
할머니를 정말 좋아했습니다. 그날들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어른이 되어서, 지금 보면, 리어카 같은 것은 타고 싶지 않습니다. 창피합니다. 그렇지만, 그땐 어렸기 때문에, 아이였기 때문에, 별로 부끄럽거나 싫지 않고, 즐거웠습니다. 그 후, 조금씩 머리가 크면서, 그렇게 좋아했던 할머니가, 아주 싫어지게 되었습니다. 왜 그렇게 싫었냐면, ‘할머니 = 김치, 김치 = 한국’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것과 관련되는 여러 가지, 살아가는데 괴로운 일들이 있었습니다. 별로 예를 들고 싶진 않지만….역시 괴로운 일이 많았습니다. (참고로, 그의 전기에 보면 이지메를 수없이 많이 당했다고 한다) 그런 괴로운 일들을 피하려면 역시 숨을 죽이고, 숨어있듯이, 일본이름으로 살아가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더욱 더 콤플렉스가 되었습니다.
그런 시기에, 제 아버지가 피를 토해 입원을 했습니다. 가족의 위기였습니다. 1살 연상인 형은 고교를 중퇴하고, 울면서 지내던 어머니를 도와, 아버지의 입원비, 집안 써포트를 하는 어머니도 열심히 일했습니다. 나에게 있어서는, 이미 주저 앉은 것 같은 가족의 위기였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극복하지 않으면 안된다. 어떻게 해야 될까…나는 그때, 사업가가 되겠다고 각오를 다졌습니다. 일시적인 해결책이 아니라, 가족을 유지시킬 수 있는 사업을 일으키겠다 라고 중학생 때 각오를 다졌습니다.
손정의라는 이름으로, 모든 인간은 함께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그리고 그 때, ‘료마가 간다’를 읽었습니다.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주눅들어 우물쭈물하던 제 자신이 한심했습니다. 인종이라든지, 그런 사소한 것으로 고민하고 있었던 것 자체가 내가 작은 인간이었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래서 사업가를 목표로, 미국에 가자!, 미국에 건너가자고 결심을 합니다. 일본을 벗어나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울었습니다. 친구나, 선생님도, 모두가 말렸습니다. 할머니가 걱정된다며 가지 말라고 울고 울고 울었습니다. 어머니는 매일 울었습니다. “가지 말아라, 그렇게 알지도 못하는 무서운 곳에 가지 말아라, 가면 돌아오지 못하게 될꺼다”
하지만 나는 뿌리치고, 미국에 가서 사업가가 되는 ‘보석’을 찾아오겠다고. 그래서 무엇인가를 잡고, 일본에 돌아와 사업을 일으키겠다고, 반드시 가족을 지탱해내겠다고 말했습니다.
친척아저씨, 아줌마, 사촌들에게도 만류의 말을 들었습니다. “마사요시, 넌 냉정한 녀석이다. 아버지가 피를 토하고 살지 죽을지 모르는 판에, 아버지를 두고, 혼자서 미국에 가다니, 너 자신만을 위해 가는 것이냐’ 라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반박했습니다. “그런 게 아닙니다. 가족을 지켜내고 싶기에 가는 것입니다. 하는 김에 한가지 더 얘기한다면, 지금까지 제가 고민해온 국적이라는 것, 인종이라는 것, 똑같이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나는 훌륭한 사업가가 되어, 손정의라는 이름으로, 모든 인간은 함께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겠습니다”고 마음에 맹세 했습니다.
그 결심을 하고서, 할머니에게 말했습니다. (이 때부터
할머니와 함께 둘이서 2주정도 한국을 돌았습니다. 할머니도 기뻐해주셨습니다. “마사요시, 네가 함께 한국에 가 보자고 해서, 겨우 한국에 가겠다는 마음이 생겼다”고. 그렇게 할머니와 두 명 이서 한국에 갔습니다.
전기도 아직 나오지 않는 작은 마을에서, 비옥하지 않은 토지라 사람도 적고, 양초를 켜고 먹는 식탁. 하지만, 모두들 촛불로 켠 컴컴한 식탁에서 새까만 치아를 보이며 활짝 웃어주었습니다. 할머니는
그 아이들의 웃음은 바로 다른 사람 덕분입니다. 아무리 괴로운 일이 있어도,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누군가가 도와줍니다. 그러므로 절대로 사람을 원망하여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 덕분이므로. 나는 회사를 시작한지 2년 만에 큰 병을 얻어 입원했습니다. 이대로 죽는구나 생각했습니다. 돈도 아니고, 지위나 명예도 아닙니다. 할머니가 해준 것처럼 기뻐해주는, 넝마 같은 것에도 기뻐해주는…그런 일에 공헌할 수 있다면 행복하겠다고. 입원했을 때에 점점 더욱 절실하게 생각했습니다
(마지막 어린여자아이 사진이 올라 옵니다.)
만난 적도 없고, 본적도 없고, 이름도 모릅니다. 캄보디아인지 어딘지의 작은 여자아이가 흙 묻은 얼굴로, 사과1개를 받고, ‘고맙습니다’라고 합니다. 무언가
그렇게 공헌할 수 있다면 행복하겠습니다.
이름도 모르는, 그저 단 한 명의 아이가 기뻐해주었으면 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의 연설은 그렇게 끝이 난다. 열심히 하겠다는 인사말로…
그의 울음을 해석하거나 평가하거나 의미부여를 하는 것은 너무 건방진 일인 듯 하여 굳이 부연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일본 최고 부호 중 한 사람이, 당대 최고의 기업가 중 한 사람이, 2만 명의 부하직원들과 5백 개가 넘는 관계사의 대주주로 있는 한 사람이 그와 그의 회사의 30년 계획을 발표하면서 눈물로 발표를 마무리 한 것은 그가 발표한 계획이 정말로 진솔하고 결의에 찬 것임을 선명하게 보여 주었다는 사실만은 꼭 얘기하고 싶다. 그가 왜 트위터로 소통을 하는 것에 몰두하는지, 왜 회사 30년 계획을 전세계에 유스트림으로 생중계를 했는지, 그리고 왜 그는 울었는지는 2시간의 연설을 다 보시면 아실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그의 발표에 대해 어떤 일본 사람이 트위터에 올린 글인데 정말로 딱 적합한 평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옮겨 본다.


동영상 참 감동적이었습니다. 30년, 300년 번창하는 소프트뱅크가 될거에요!그리고, 히까리노미찌 란 동영상도 봤는데, 손사장님의 열의를 1000%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도 이런 분이 계셔야되는데 !
2010/06/30 20:17한국에는 지금까지는 없었던 것 같네요. 앞으로 노력을 해서 환경을 만들어 간다면 후배들 중에, 자라나는 새싹들 중에 이런 사람이 나올 것이라 믿습니다. 비온 뒤의 땅이 더욱 더 단단해 지는 법!
2010/07/01 09:48아...아정말찡하네요....
2010/07/01 01:39아직 세상이 살만한것 같습니다...
네, 그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 바로 다니엘님과 같은 분이라고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2010/07/01 09:48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2010/07/01 09:06저도 최근들어 눈물이 잦아지더라구요. 노래를 듣다가도 갑자기 주루룩, 옛일을 회상하다가도 느닷없이 주루룩...이러다 울보되겠어요. ^^
2010/07/01 09:51진실은 언제나 통하는것 같습니다. 가슴이 따뜻해 집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2010/07/01 09:21격려의 말씀 감사합니다. 이번에 제가 미숙하게 글을 쓰면서 느낀 점이 하나 있는대요...좋은 소재가 있으면 글은 그냥 멋지게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차두리선수, 손정의회장에게 감사하지요. ^^
2010/07/01 09:50갑자기 눈물이 핑도네용. 감동적이에요. 열쒸미 살아야겠숩니다 >_<
2010/07/01 10:23^^ 저희 소프트뱅크코리아의 전 성원들도 열쒸미 살겠습니다.
2010/07/01 15:46http://www.youtube.com/watch?v=sCdJ9bOOX5Q
2010/07/01 11:33http://www.youtube.com/watch?v=tGEutAL133w
이 두개의 동영상 자료에 위의 소프트뱅크 자료와 함께 한글 자막을 곁들였습니다. 이곳 자료와 소프트뱅크 본사의 자료를 참고하였는데, 혹시 저작권법 등에 문제의 소지가 있으시면 언제든지 yyt204 at gmail dot com 으로 메일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줄거운 하루 되세요, 아침부터 정말 좋은 글과 이야기 읽고 듣고 갔습니다.
저희가 게으르고 무지해서 하지 못했던 일인데...너무 고맙고 감사드립니다. 저작권은 아무 문제가 없답니다. 손정의회장은 본인의 얘기를 유스트림으로 전세계에 널리 알리기로 마음 먹은 다음에는 저작권은 전혀 문제될 게 없다고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2010/07/01 15:39소프트뱅크란 회사에 대해 거의 아무런 정보도 없이 트위터를 통해 동영상만 잠시 봤을뿐인데도 가슴이 먹먹하네요. 이름도 모르는, 그저 단 한 명의 아이가 기뻐해주었으면 합니다. 라는 말 깊이 공감합니다. 우연히도? 제가 지금 캄보디아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요. 조금 더 열심히 해야겠다!!! 다시 한 번 다짐하게 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2010/07/01 12:09앗! 캄보디아에 계시는군요. 잘 알지는 못하지만 왠지 열악한 환경이지만 열심히 지내고 계실거라 믿어 버리겠습니다.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2010/07/01 15:35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2010/07/01 12:11글쓴이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0/07/01 15:33잘 보고 갑니다...
2010/07/01 18:31제 블로그에 트랙백 하겠습니다..^^
관심과 격려에 감사드립니다.
2010/07/02 09:51아 감동이다. 글 잘읽었습니다. 제 블러그에 모셔 가겠습니다.^^
2010/07/02 13:26ㅎㅎㅎ 뭘 모셔갈 것 까지는 없으시구요, 그냥 퍼다 가시면 됩니다. 관심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
2010/07/02 14:51접니다. 인터넷 서핑하다가 여기까지 왔네요. 전 이런 블로그가 있는지도 몰랐네요!
2010/07/02 14:28그리고 형님, 너무 글 잘 쓰셨습니다.
여름 가기 전에 헌 번 뵈야죠..
고마우이...종종 들러서 격려의 말 남겨 주시게. 그리고 여름이 가기 전에 한 번 보는 건 다른 친구들하고 일정 정리해 보고 연락줌세. 휴가 본격적으로 가기 전에 보는 게 좋겠지?
2010/07/02 14:51잘읽었습니다. 글이 너무 좋아서 퍼갑니다.
2010/07/04 05:05모든 인간이 함께라는 것을 증명하겠다는 손정의 씨의 비전을 진심으로 지지합니다.
*혹시 퍼간 것이 문제의 소지가 있으면 삭제하겠습니다.
네, 관심과 격려 감사드립니다. 마음대로 퍼 가셔도 됩니다. 다만 출처만 살짝 밝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2010/07/04 17:39글 잘 읽었습니다. 늦은밤 보면서 눈물이 핑 돌게 되는군요..
2010/07/06 00:14순간 제 인생의 뒤를 보게 되었습니다.
출처 밝히고 글 좀 퍼가겠습니다. (__)
관심 가져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출처만 밝혀 주신다면 마음껏 퍼 가시기 바랍니다. 많이 부족함을 양해도 해 주시기 바랍니다. ^^
2010/07/06 18:09스티브 잡스의 연설과는 다른 감동입니다. 소프트방크가 좋아졌습니다.
2010/07/07 14:20가급적이면 소프트'뱅'크를 좋아해 주심이 어떠신지? ^^ 관심과 격려 감사드립니다.
2010/07/12 1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