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뱅크의 손정의회장과 관련한 일화로 회자되는 이야기들 중에는 종종 지나치게 과장된 내용들이 눈에 띕니다. 남다른 승부사 기질을 지닌 손정의회장이지만 가끔 기인(奇人)처럼 과장된 얘기들을 접하면 가끔은 웃프기도 합니다. 소프트뱅크그룹에 몸담고 있는 관계로, 요즘 일부 방송사의 뉴스 코너처럼 ‘팩트 체크 (Fact check)’를 해 드릴 수 있는 내용 몇 가지를 소개해 볼까 합니다. 짤막한 일화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작은 깨달음은 가질 수 있는 내용이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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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그 첫 번째 스토리로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해당 국가 내에서 2등 통신사가 아니었던 곳이 최초로 출시된 아이폰을 독점 판매하게 된 일화를 소개합니다.
소프트뱅크가 2006년 보다폰재팬 (Vodafone Japan)을 인수할 당시, 그 회사는 일본 통신시장에서 꼴찌 이동통신사였습니다. 아시다시피, 일본의 이동통신사는 NTT의 DOCOMO와 KDDI의 AU가 1, 2등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었지요. 가입자 수만 하더라도 2등인 KDDI/AU에 거의 3배 가까운 차이를 가진 확실한 꼴찌가 보다폰재팬(인수 후 사명을 소프트뱅크모바일로 변경)이었습니다.
혹시 아이폰3G가 2009년 국내에 처음 도입이 되었을 때를 기억하시나요? 국내에서는 KT가 아이폰 독점 판매를 했고, 저 역시 그 전까지는 SKT를 계속 쓰다가 아이폰을 사용하기 위해 처음으로 KT로 통신사를 옮겼던 기억이 납니다.
한국의 사례처럼 최초의 아이폰 출시 당시 잡스에게는 아이폰의 독점 판매권한에 관한 확고한 원칙이 있었습니다. 아이폰을 출시하면서 일정 기간 동안은 각 나라의 2등 이동통신사에게 준다는 원칙! 이유는 아마도 1등보다는 2등이 아이폰을 자신들의 통신시장 점유율을 높여주는 무기로 삼아서 뭘 해도 열심히 할거라는 믿음이 있어서가 아니었을까요. 그랬기에, 일본도 그 기준에 의하면 KDDI가 아이폰을 공급했어야 합니다. 하지만,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일본의 3등 사업자인 소프트뱅크모바일이 독점 판매권을 가져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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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혹자는 손정의회장이 스티브 잡스와 친해서 가능했던 일이라고도 합니다. 그 두 분은 물론 친분이 있는 사이었고, 스티브 잡스가 타계했을 때 손정의 회장도 깊은 애도를 표하며 한 영웅의 죽음을 가슴 깊이 슬퍼했던 것도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주지하시는 바와 같은 두 사람은 그저 타고난 사업가 입니다. 협상 테이블에서만은 남다른 수완을 발휘하면서 결코 지기를 싫어했던 그런 두 사람이었습니다.
협상전술에 있어서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상대방의 마음을 여는 것입니다. 즉, 다른 사람이 아쉬워하는 그 무엇을 파악하고 그 점을 해결해 주면서 내가 원하는 것을 우회해서 얻어내는 능력이 탁월했던 손정의 회장은 스티브 잡스와의 협상에서 감히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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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애플은 아이폰 출시 이전까지만 해도 베스트셀러 제품, MP3 플레이어인 아이팟 재고로 골치가 아프던 때입니다. 음악재생 기능이 내장된 아이폰의 등장이 가까워지면서 아이팟의 수요는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되었고, 이미 만들어 놓은 제품들은 가득 쌓여있었습니다. 손정의 회장은 미국으로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이 부분을 고려한 협상 전략을 세우게 됩니다. 그리고, 스티브 잡스를 만나서 ‘당신의 고민거리인 아이팟 재고가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을 내가 전량 현금으로 사 주겠다. 대신, 나에게 일본의 아이폰 독점권을 달라’고 요청합니다.
물론 두 사람은 아이폰 출시 2년 전에 나눈 대화도 잡스의 마음을 움직이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는 후문이 있습니다. 이야기인즉슨, 잡스를 만난 손회장이 아이팟에 통신기능을 첨가한 거친 스케치를 보여 주면서 이런 제품 나오면 나한테 독점권을 달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손회장의 소프트뱅크는 그 당시인 2005년에는 이동통신사를 가지고 있지도 않았지요. 그래서 잡스는 이동통신사나 우선 만들든지 사든지 하라고 조언을 했다고 합니다.
아무튼, 스티브 잡스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세운 원칙을 살짝 비껴나가기는 하지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을 겁니다. 결국 스티브 잡스는 손정의 회장의 제안을 수락하고, 소프트뱅크모바일은 아이폰의 독점 판매를 시작하며 일본 이동통신시장 내에서 점유율을 꾸준히 높여가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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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때 우격다짐으로 구입해 온 아이팟은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요? 손정의회장은 이 아이팟을 소프트뱅크모바일이 그 때까지 판매를 하고 있던 도시바, 샤프, 소니가 제조한 이른바 피쳐폰에 번들을 해서 고객 사은품으로 나누어주었습니다.
비록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는 것을 감수했지만, 손정의회장 입장에서도 이 딜은 손해 보는 딜이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만약에 아이폰이라는 신무기를 가지지 못했다면 아마도 소프트뱅크모바일은 2008년 세계경제를 강타한 리만사태에서 살아남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고 손회장은 가끔씩 회상합니다.